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허리일까, 발일까

by Aphraates 2023. 9. 27.

긴 추석 연휴에 들어간다.

달력과 현실이 딱 맞아떨어진 기막힌 황금연휴다.

일찍이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기다린 날들이지만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여기서도 호사다마는 존재한다.

길다고 키 자랑할 거 아니고, 힘 세다고 힘 자랑할 거 아니다.

 

연휴를 어찌 보내야 할지 약간의 고민도 있다.

처한 환경과 여건은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망설이며 고민하는 처지인 자체가 행운이자 대견스러운 일이어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미안하다.

그렇다고 그런 고민이 없는 사람이 불행하다거나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대목에서는 고민하는 쪽이 좀 더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장장 6일이다.

하루가 빠진 한 주다.

공적으로 공인된 연휴이다.

연휴 전체를 휴무하자고 결정을 한 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가 명절이라고 해서 며칠씩이나 공장 문을 닫고 배를 닻에 묶어놓으면 어쩌냐면서 우리는 일을 하고 물건을 실어야겠다고 하는 수출입국(輸出立國) 보루로 나서는 분위기였다.

공정도 촉박하고, 집에서 놀아봐야 뭐하겠느냐.

3일 쉬고 나머지는 나와서 일하자는 건의와 토론이 몇 차례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관리 측에서는 좀 부담스럽더라도 일해야 한다는 쪽으로 돌아가 준비했다.

그런데 며칠 상간으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쉴 때는 푹 쉬고 일할 때는 더 열심히 하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갑론을박 끝에 현업에서 쉬자는 쪽으로 의견 통일이 되어 그를 따르기로 했다.

 

감리 쪽은 쾌재였다.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화장실에 갓 웃는 상황이었다.

빤히 보이는 얄팍한 제스처로 큰 인심 쓰는 것처럼 나왔다.

일하시는 여러분들께서 그러시니 우린들 어쩌겠느냐며 못 이긴 체하고는 슬며시 연휴 내내 일은 없다고 결정했다.

대신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분야별로 비상 연락망을 확보하고 유지하여 유사시에는 즉시 현장 출동할 수 있도록 하자면서 무분규의 노사 합의를 이루어낸 것처럼 일사천리로 합의하고는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리바이벌을 우려하여 회의 끝!”을 선언했다.

 

귀향하는 얼굴들이 밝고, 발걸음이 가볍다.

무슨 곤란한 문제가 있다면 이런 때에 논의에 올리거나 결재를 요청하며 두말할 것 없이 승인 사인을 할 것처럼 화사한 지리산 자락 공사 현장이다.

연휴가 지루하다 싶은 분들은 서로서로 소통하여 남원에서 만나 일합을 겨루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엄살을 부리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당 선생은 어떨까.

허리가 걱정일까, 발이 걱정일까.

구들장을 짊어지고 있어 허리가 늘어지기보다는 어디든지 가야기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를 것 같다.

다만 늘어지지 않는 허리라고 해서 방치할 것도, 고무신 타는 냄새가 나는 발이라고 해서 무리수를 둬 가면서 억지를 부릴 것 같지는 않다.

살기 위하여 허리와 발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둘을 재촉하는 것이니 기쁨이 더 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을 해본다.

 

<http://kimjyyhm.tistory.com>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푹 쉬니  (0) 2023.09.28
부곡 하와이  (0) 2023.09.27
지공거사  (2) 2023.09.25
세컨드  (2) 2023.09.24
찌륵찌륵  (0) 2023.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