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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푹 쉬니

by Aphraates 2023. 9. 28.

동분서주하던 일상을 접고 푹 쉬니 좋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다.

엄살을 부리거나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다.

일이 많고 어려움을 토로할 시간도 없다.

자신을 돌보거나 이해득실을 따질 새도 없다.

돌아가는데 얹혀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면서 함께 하다보면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고마워할 정도로서 농담 삼아 하는 말이 등에서 콩튄다는 하소연이다.

 

대전에서 200km 떨어져 멀긴 하나 시간적이 여유가 있던 한려수도 삼천포 살이 3년이었다.

무탈하게 해안가 살이를 마감하고 다시 내딛은 발길이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뛰는 130km 남쪽의 깊은 산자락 남원 살이 1년차다.

 

내 마음 내 뜻대로 힐 수 없는 날들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내몬 것도 아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이라 나선 것도 아니지만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있어 사양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JP가 주군과 5.16 혁명세력의 견제에 밀려 외유 길에 나서면서 던진 한 마디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이 그대로 통하는 상황이다.

 

그런 날들로부터 해방감을 맛보는 추석 대전 귀향길이 즐거웠다.

남원에서 대전 올라오는 순천-익산과 호남고속도로도 평상시와 비슷하여 논스톱으로 달려 향촌에 도착했다.

잠시라도 멈칫거리다가는 밀리는 차들로 인하여 평소 두 시간이면 족한 길을 세네 시간 걸릴 수도 있다는 계산이어서 내친 김에 달린 것인데 피곤하지도 않았다.

집에 간다는 설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느리적거릴 때는 느리적거리더라도 서두를 때는 서둘러야지 안 그러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파나단에서였다.

 

차 트렁크와 뒤 자석에 빵빵하게 싣고 온 춘하추동에 교대할 살림살이와 추석 상 거리를 집에 올려다 놓고는 곧바로 이발소로 달려갔다.

안 깎아도 될 것 같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머리를 시원하게 쳐내고 차례를 모시고 성묘를 하고 싶어서였다.

짐 정리는 데보라 몫이다.

밖의 나도 거들고 싶지만 도와준다는 것이 사고만 치는가 하면 집안 살림은 자기 몫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안의 데보라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구좌를 그리 다르게 운용하고 있다.

 

할 것을 대충 하고는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했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미당 선생이 주방장이 되고 데보라가 보조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자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면 끓이는 일이다.

요리를 하기 위해 레시피 준비를 요청했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는 데보라가 당번이다.

신 라면 하나, 은산 국수 반 주먹거리, 법성포 산 꽃게 두 마리, 묵은 김장 김치, 대파를 달라고 했더니 미리 준비한 것처럼 금방 척척 잘도 내놨다.

라면이라고 해서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정성을 들여야 제 맛이 난다.

라면의 본향이라는 일본 신주쿠에 갔을 때 쭈그러진 납짝한 냄비에 라면을 넣고 끓이면서 연시 면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공기를 주입하는 요리법을 터득한지라 그를 따라 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냄새가 좋았고,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어가며 길다란 신 김장김치를 얹혀 먹는 라면 맛은 일품 이상이었다.

4등분하여 넣어 끓인 커다란 게 맛도 기가 막혔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뱃사람들이 연상됐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이 갑판에서 게(생선)를 넣고 끓여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이 아파트 식탁에서 그리 끓여먹는 맛도 말로 설명을 다 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반굉일같은 연휴 전 날을 그리 보내고는 따스한 물로 샤워를 하고 거실 바닥에 누워 푹 쉬니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 한 이틀은 청양 본가를 오가며 또다시 추석 치레를 해야기 때문에 좀 바쁘겠지만 틈새를 이용하여 한가로움을 찾아 누리는 즐거움이 쏠쏠할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시고 이렛날에는 하루 푹 수니 좋았다는 성경말씀을 늘 따랐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 많은 것을 원하면 그게 귀한지도 모른다는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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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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