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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82

by Aphraates 2025. 2. 23.

미당 본가에 다녀오려고 가다가 공주(公州) 공암의 O 칼국수에 들렀다.

아침도 시원찮았던데다가 출출하여 우리의 전통 외식 메뉴인 칼국수를 한 그릇 땅기기 위해서였다.

오가면서 보면 그 집 주변에 온통 차들이 주차돼 있어 손님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도 몇 번 가봤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릴 정도의 가성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여전히 차가 메지도록 있는 것을 보면 뭔가는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오후 2시가 넘었으니 저처럼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 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기실이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우리의 단골 메뉴인 칼국수이지만 그거 한 그릇 하는데 줄 서기 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서려고 하였더니 데보라가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고 하니 기다렸다 먹고 가자 하여 그러자고 했다.

 

번호표를 뽑으니 82번이었고, 대기인 숫자는 28번이었다.

82번이라는 숫자가 놀라웠고, 그를 뒤집어 놓은 숫자인 28도 신기했다.

그 뒤로도 사람들이 꾸역꾸역 와서 번호표를 뽑았다.

좀 있다가 230분이 지나자 카운터인지 주인장인지 하는 시골풍의 영감님이 나오더니 식당 입구에 오늘 점심은 재료가 소진되어 마감이고 오후 5시 이후에 오라는 깃발을 내걸었다.

영업 방침인지 전략인지 모르지만 고객을 배려하지 않은 업주의 갑질이 아닌가 하는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를 이해해주는 것도 손님들의 인내와 배려라는 생각도 들었다.

 

30분 이상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번호가 호출되어 들어갔다.

민물새우 칼국수 2인분과 만두 한 개 도합 26,000원어치를 선주문하였더니 정신없이 움직이던 종업원이 많이 해본 솜씨로 자리를 알려주며 앉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식당 내를 힐끔힐끔 바라보니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이야기를 나누며 비교적 간단한 메뉴인 칼국수와 수제비, 수육과 만두를 맛있게들 들고 있었다.

 

얼만가를 기다리니 만두가 먼저 나왔다.

직접 빚은 것인지 납품받은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촉촉하고 감미로운 맛이 우러나는 만두로 가성비 엑셀렌트(Excellent, 우수)였다.

이어서 나온 큰 냄비의 칼국수도 일품이었다.

양과 질이 월등했다.

약간 굵은 듯한 면발과 민물새우와 작은 조갯살과 구수한 육수가 다른 집 칼국수와는 엄연한 차별화가 됐다.

면은 간신히 다 먹고 국물에 덤으로 내 온 작은 스텐 밥그릇의 밥을 말아먹었다.

칼국수 한번 푸짐하게 잘 먹었다는 소리가 나왔다.

남은 지국의 국물을 어쩌나 했더니 걱정할 게 없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을 보니 천 원을 주고 용기를 사다가 포장하여 들고 일어서 우리도 그리 했다.

미당 선생네도 많이 달라졌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싸 들고 오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남은 칼국수 국물을 싸 들고 나오다니 별일이었다.

 

각설하고.

그저께 발전소 구내식당에서의 실한 떡갈비와 파스타 점심, 저녁의 둔산동 낸 삼겹살에 두툼해진 속을 싹 씻어내는 듯한 칼국수 한 그릇이었다.

줄 서서 기다려 먹음직한 칼국수이기도 했다.

 

손님이 없고 장사가 안돼 다들 어렵다고 한다.

속도 모르는 사람들은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되는 집은 되니 특색있어 더 잘 해보라고 한다.

장사든 뭐든 하면서 대충대충 그럭저럭하는 사람은 없다.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다 제 팔자라며 그런 생각을 갖고 장사하는 사람들

은 벌써 보따리 싸고 없다.

다들 피땀 어린 노력과 진심 어린 정성을 기울여가면서 온 힘을 다 해도 하루 세 끼 밥 먹고 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운영 환경은 각박해지고, 고객 욕구 수준은 높아져 어어 하다 보면 뒤처져 복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눈 없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 아니라 버젓이 눈이 있어도 코를 베가려고 덤벼드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가하게 공자왈맹자왈 할 때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하는 로댕만 될 순 없다.

나라님은 목욕재계하고 천단에 올라 하느님과 조상님들께 자비를 청하고, 백성들은 허리띠와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쌀 한 톨이라도 아껴가며 국난극복(局難克復)에 도전해야겠다.

 

대기 번호표 82, 앞에 남은 사람 숫자 28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찌증 낼 게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니 기다리고, 버티고, 이겨내야 한다.

그런 논리는 인기 많은 유명 칼국수 집에서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 곳곳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으니 거부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임하여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거둬내야 할 것이다.

 

https://youtu.be/2ZZVCSrtRII?si=aVjSsDFtllYA2rHd

동그라미 - 같이 있게 해주세요(1982년, 대성음반)LP 초반 고음질 녹음(가사재중)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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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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