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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구장區長

by Aphraates 2025. 4. 8.

 

구장區長

갓난 엄니께서 우리 동네 이장을 그렇게 부르셨다.

옛날 식인데 상당히 높임 말이었다.

 

지난주일 미사 후다.

로비에서 교우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다가 구청장님과 마주쳤다.

400명 갓 넘는 교우님들이 미사 참례하시는데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서로 미사 시간이 어긋날 수도 있고,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한 주 또는 그 이상으로 다른 성당에서 미사 참례하거나 궐할 수도 있어서다.

미사 시간과 일자가 어긋나면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서로 보게 되면 어안이 벙벙하여 어디로 이사 가신 줄 알았다고 하는 게 보통 인사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소속된 성당으로 가고, 각종 단체 회합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봉사할 것이 요구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구청장님과는 한참 만이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마냥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편으로는 껄끄러웠다.

가까이하기에는 그런 어색한 선입감이 있었다.

 

그냥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같은 가톨릭 교우이다.

주민과 구청장으로서 같은 동네 사람이다.

좋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또는 희미하게 다른 것이 있었다.

얼마 전 TV 화면을 통해 본 장면은 무거웠다.

탄핵 찬반 시위가 팽팽하게 전개될 때 우리 구청장님도 고향 후배인 시장님과 다른 구청장님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찬반(贊反)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환하게 웃던 장면이었다.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해야지 왜들 저러시는지......, 하는 불만이었다.

처지는 이해하나 부적절해 보였다.

단체장은 정당 정치인 출신이지만 당선된 후로부터는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행정관리가 먼저이다.

표 안 나게 은밀하게 해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대놓고 정파를 우선시하는 것인지 안 좋아 보였다.

 

그렇다고 괴로운 만남은 아니었다.

피하고 싶은 잘못된 만남도 아니었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다.

그러니 관계 설정이 어려울 게 없다.

같은 공동체원으로 만났으니 좋은 만남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주마등처럼 지나치는 그 모습이 껄끄러웠고, 찝찝했다.

복잡하게 따질 거 없이 기분 좋은 만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좀 유연하게 하시지 왜 그랬어요하는 소리가 나왔다.

 

하나 모른 척 할 순 없었다.

초미니 인사를 나눴다.

K) 구청장님 오셨네요. 수고 많으시지요.

S)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지요. 건강해 보이십니다.

K) 그럼, 제가 일이 좀 있어서요.

S) , 안녕히 가세요.

 

스치며 지나듯이 간단하게 나눈 인사가 서운했다.

관인 구청장과 민인 구민은 허심탄회한 좋은 관계이어야 한다.

상하 관계니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때로는 민이 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관이 갑이 되기도 한다.

나쁜 게 아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서로가 있는 듯 없는 듯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관계인 것이 좋다.

구청장은 구의 주인인 구민을 소중히 여기고, 주민은 구의 어른인 구청장을 존경하면서 각기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

껄끄러워야 할 일이 없다.

문제는 구민이고 구청장이고 궤도를 벗어났을 때다.

그러나 어렵겠지만 그럴 때도 얼른 고치고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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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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