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방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무명천 또는 나일론 천 보자기로 책을 싸서 남자 아이들은 허리춤에 차거나 어깨에 메고 다녔고, 여자 아이들은 호텔 보이들이 손을 올려 쟁반에 유리컵을 받쳐 들고 다니듯이 책가방을 손바닥이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하여 사뿐히 얹혀서 들고 다녔다.
모양이 예쁘고 책도 많이 들어가는 가죽(훗날에는 비닐)이나 천 가방은 아주 귀해서 특별한 아이들 몇몇만이 갖고 다녔다.
필통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책 보따리를 갖고 다니다가 국민학교 고학년 때 쯤 부터 가방을 들고 다녔던 거 같다.
그 때는 가방도 제법 많아져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이 아니라면 남학생들은 손잡이가 양측으로 나 있어 양측으로 벌려지는 가방을 그리고, 여학생들은 손잡이가 하나로 한 쪽으로 열리는 가방을 들고 다녔다.
가방은 상급학교인 중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의 좋은 선물이었는데 디자인인 단순했, 색상도 검정색이나 짙은 바다색 같은 것으로 단출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주로 검정색 대학생 가방을 갖고 다녔지만 때로는 일상 살림살이가 많이 들어가는 배낭(지금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예쁜 배낭 형과는 다른 군대 배낭같은 우직스러운 모양)이나 큰 가방을 갖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 가방을 처음 살 때는 튼튼하여 만년 무끼로 쓸 거 같았다.
하지만 혈기 넘치는 나이에 험하게 써서 그런지 얼마 쓰다보면 잭이 고장 나거나 옆구리가 터져 수선하여 얼마간 쓰다가 새 것을 사곤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는 대중소의 서류 가방이나 007가방을 필요에 따라 늘 들고 다녔는데 그 때부터는 가방 값이 장난이 아니어서 기 십만 원 하기 시작하였고, 비싼 만큼 수명도 길었다.
요즈음은 멜빵을 달아 갖고 다닐 수 있는 등 다양한 형태의 폴리에탄 가방이 나와서 많이 쓰는데 여간 튼튼한 것이 아니어서 한 번 사면 대를 이어서 써도 좋을 정도이다.
거기에다가 학술대회같은 데서 논문집 같은 자료 운반용으로 주는 경우도 많아 가방이 지천이다.
헌데 많은 가방이 내 손을 거쳐 간 것 같아도 가만히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식구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여행 가방을 빼면 실제로 들고 다닌 손가방은 지금 쓰는 서너 개를 포함하여도 열 개를 안 넘는 거 같다.
오늘 새벽에는 급하게 새벽미사에 가느라고 뒷방 정리를 안 하고 간 데보라를 대신하여 방 여기저기를 정돈하였다.
그러다가 붙박이장을 열어봤더니 꽤 많은 가방이 있었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것을 본 것 같은 가방도 있고, 처음 보는 것 같은 가방도 있었다.
그리고 어지간한 돈을 주고 산 것 같은 가방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의류나 화장품 같은 여성용품의 매장에서 선물로 준 것 같았는데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가방이 쌓여있는 그 붙박이장은 정돈할 것이 없어서 그냥 닫고 말았지만 여자들한테는 핸드백이 많기도 하고, 그렇게 많아도 유행이 지나면 또 사게 되는 것은 사치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여자들의 자연스런 마음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데보라가 쓰던 가방 하나를 JI 자매님한테 주었다.
데보라가 그 가방을 처음 사서 들고 다닐 때부터 싫증나면 달라고 찜해놨다면서 볼 때 마다 가방 안 가져오느냐고 보챘단다.
어디에다 두었는지 잘 몰라 찾아봐야 한다면서 피일차일 미루니까 급기야는 나보고도 함께 찾아보라고 성화여서 찾아낸 것이었다.
색다른 형태의 가방이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게 그건 거 같았다.
그리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남이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랬을 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역시 여자의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갤러리에서 외국제 명품 가방을 세일할 때 하나씩 사서 핸드카에 싣고 다니며 흐뭇해하던 여자들과 그를 본 다른 코너의 아는 점원들이 저 정도는 하나씩 있어야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하드라면서 간접적으로 옆구리를 찌르던 때가 떠올랐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명품 가방 하나 정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역시 여자의 마음일 텐데 그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무관심한 채 그러냐고 고개만 끄떡였으니......, 서운해 할 상황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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