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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이 것 저 것 가릴 새 있나요?

by Aphraates 2008. 7. 22.
 

기상청이 날씨를 예보하는 것인지 중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밉상청이라고 하라는 지탄까지 받고 있다.

장마, 태풍, 폭염 등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들쭉날쭉하지만 정확한 예보가 안 되고 수시로 빗나가기 때문이다.

기상청 예보를 참고로 뭔가를 계획했다가 틀어지면 짜증이 난다.

그러나 관계자들도 그런 치욕적인 비난을 받아가며 속수무책으로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도 잘 안 맞아 안절부절하지 못할 테니 그 안타까운 심정도 이해해줬으면 한다.


마른장마의 폭염이 다시 시작되리라는 예보를 듣고 나왔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짝수 차량에 합승하여 출근해서 보니 사옥 옥상 방수 공사와 스위치 야드(Switch Yard)와 사옥 주변 제초 작업을 한다고 많은 분들이 사무실 앞에 와 계셨다.

언뜻 봐도 공사하기에는 날씨가 부적절할 거 같았다.

그래서 책임자 분한테 “오늘부터는 폭염이 다시 시작된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작업을 하실 수 있겠어요?” 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책임자 분께서 “저희들이야 이 것 저 것 가릴 새 있나요 뭐. 비가 오더라도 일을 빨리 끝내야지요. 현장은 비가 안 맞도록 조치하여 작업 내용에는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고, 저희들은 비를 좀 맞아도 괜찮으니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셨다.

하기사 공사 현장에서 앞뒤의 이런저런 장애요인 다 따지다가는 제대로 공사를 할 수가 없어서 웬만하면 강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께 설명을 들으신 다음에 많은 비가 내리면 무리하시지 말고 중지하는 것으로 하시고 안전하게 작업하시라고 일렀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창문 밖으로 보니 인부들께서 공사 채비를 하느라고 바쁘게 왔다갔다들 하시었다.

그분들 입장에서야 주어진 할당량을 빨리빨리 해 치우고 다른 현장으로 가시는 것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우천불문(雨天不問)하고 일하는 것을 보니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특히 시공 자재나 물량이 비를 맞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보호막을 설치하지만 그를 시공하는 당신들 옷과 몸은 젖어도 괜찮다고 하는 데는 가슴이 찡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거늘 그렇게 사람보다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식으로 주객(主客)이 전도돼도 되는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런 풍조가 없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허름한 작업복에 공사현장을 다녀서 새까만 얼굴이지만 그 분들이 나보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일이 될 뿐 아니라 그런 게 하나하나 모여서 국부(國富)를 이루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 것 저것 가릴 새 없이 일을 해야 현상유지라도 될 거 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 세상 누구에게나 애로사항은 있고, 그만큼 일 안하고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끌리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숙연해질 때가 있다.

그렇거니 비 맞고 몸을 적시며 일하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어렵게 일한다는 인정이나 받아야 할 텐데......, 당연히 그렇겠지만 노파심에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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