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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깍쟁이 짓 해 봐야

by Aphraates 2008. 7. 24.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하여 저만 약은 체 하며 깍쟁이 짓 해 봐야 남는 거 없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음흉한 방법으로 저만 잘난 체 해 봐야 별 거 아닌 세상살이의 이치다.

처음 언뜻 보기에는 크게 이득을 본 거 같고, 체면 유지가 된 것 같지만 나중에 이해득실을 계산해 보면 그러느라고 눈치보고 아귀다툼하느라고 몸과 마음고생만 했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아는 지 모르는지 보기 민망할 정도로 깍쟁이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주는 거 없이 밉다.


얼마 전에 청양 본가에 감자를 가지러 가는 참에 은산 국수집에 들렸다.

국수 값이 원재료인 밀가루 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작년 이 때쯤과 비교하여 50% 이상 올랐다는 설명이었다.

물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로서도 요즈음 물가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국수 만드는 일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 참 나누다가 국수 값을 치르면서 데보라와 주인 간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화가 나서 얼굴 붉히는 실랑이가 아니고 서로 양보하는 보기 좋은 실랑이어서 나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밀가루 포대에 담은 국수 뭉치가 10개 이고, 아까 본가에 가져간 것이 2개이니 합이 12뭉치였다.

한 뭉치에 3,800원씩이니 국수 총액이 45,600원이었다.

셈이 느린 데보라가 그럼 얼마인지를 주인한테 물었다.

주인은 지나치는 듯한 말로 45,600원인데 끄트머리는 떼고 45,000원만 주시면 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데보라가 나는 그런 거는 싫다며 46,000원을 건넸다.

다시 주인이 정말로 잔돈이 없어서 그런다며 이런 때는 우수리는 떼도 된다고 하였고, 이어서 데보라가 그러면 46,000원을 받고 다음에 와서 국수를 살 때 400원을 깎아 달라고 하는 것으로 셈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승강이 하는 모습을 국수집 주인의 친구 분이 보시고서 한 푼이라도 깎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가 어떤 사람은 한 술 더 떠서 주인이 국수 값을 잘 못 계산하여 덜 받으면 입을 꾹 다물고 불이 낳게 도망가는 세상인데 이런 분도 계시다며 감동스럽다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주인께서 우리 손님 중에는 이런 분도 계시니 얼마나 자랑스러우냐면서 너도 본받으라고 친구한테 농담을 하셨고,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당신들이 드시려고 냉동하여 보관하였던 쑥 칼국수를 한 뭉텅이 가져오시면서 아무렇게나 끓여도 입맛에 맞으실 거라며 잡숴보라고 하셨다.

가끔 들리는 국수집이 몇 십 년의 전통을 가진 집이라고 하지만 우리와는 특별한 관계는 아닌데 그렇게 실랑이하는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아름다웠다.


약삭빠른 사람들도 많다.


봉사를 하자고 하면 직장도 없는 백수이면서 일이 바빠서 어렵다고 하는 파렴치한 사람도 있고, 돌아가며 호선으로 선출하는 단체장 선출시기가 되자 이번에는 분명히 자기 차례가 될 거 같으니까 있지도 않은 시어머니 병수발해야 한다며 나타나지도 않다가 단체장이 선출되고 나면 시어머니가 다 나았다며 나타나는 어른을 두 번 욕되게 하는 불효막심한 며느리도 있고, 자기애들 잘 먹이고 잘 놀게 하려고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마련을 위하여 옥수수를 파니 한 자루씩 갈아달라고 애원해도 옥수수가 참 맛 없게 생겼다며 슬금슬금 도망가는 얌체 엄마도 있고, 상사한테는 칠갑산 고랑에서 나오는 장뇌삼을 산삼이라고 갖다 바치며 갖은 아양을 다 떨면서 부하한테는 보문산 중턱에서 자라는 오염된 도라지 꼬리 하나 못 얻어먹은 것이 서운하여 태클을 거는 야비한 샐러리맨도 있고, 볼품없는 야채를 놓고 파는 노점상의 어수룩한 시골 채소장수한테 함부로 하며 천 원 어치 사고 이천 원 어치는 가져가려고 하는 인정머리 없는 주부도 있고, 다들 어렵게 일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먹을 때는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타나 설레발이 치는 철면피 같은 한량도 있고, 사람들을 이간질 시켜 놓고 자기만 뒤로 쏙 빠져서 실속을 챙기는 아이큐 두 자리 숫자의 바보 아닌 바보도 있고, 공짜라니까 표 안 나게 다가가서 살며시 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다가 더치페이라고 하니까 먹은 것까지 토해 내며 그렇지 않아도 너무 먹어 탈인데 그렇게까지 할 거 있느냐며 뒤꽁무니를 빼는 노랑이도 있고…….


백만 원짜리 월급쟁이 앞에 두고서 수당 계산이 잘못되어 오백만 원밖에 안 나왔다고 열을 올리는 얼간이도 있고, 중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환자 문병을 가서 발의 티눈 때문에 살 맛 안 난다고 호들갑을 떠는 푼수도 있고, 지은 죄도 없는데 지나가는 순찰 백차만 봐도 가슴 철렁 내려앉는 선량한 시민한테 자기가 뽑아 놓은 국회의원 알기를 뭐처럼 알고 이름을 마구 불러대는 무식한 민초도 있고, 해외라고는 제주도 밖에 가 본적이 없는 사람한테 파리의 몽마르트가 어떻고 뉴욕의 월가가 어떻고 하며 거품을 내뿜는 허풍쟁이도 있고, 한여름 땡볕에서 일하다가 나무 그늘 아래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는 사람한테 가슴속까지 써늘한 에어컨 밑에 있다가 나오니 무척 덥다며 부채질을 하는 한 참 모자란 사람도 있고 ......,


그렇게 약삭빠르고 잘 난 체 해봐야 남는 것이 없고 별 거 아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살면서 희희낙락하는 것인지 아주 커다란 쑥떡이라도 한 방 먹이고 싶다.


그런 사람들을 처음 몇 번은 애교로 봐줬다.

그리고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잦아지고, 고쳐질 수 없는 상습범이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사람 같지도 않아 우연이라도 마주치면 나았다가 기분 나쁘면 도지는 혓바늘이 다 서 성가시다.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다고?

당신도 도둑질이라도 해야 할 급박한 상황이 되면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 지금 자신이 안 그렇다고 너무 여유를 부리며 자만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실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지킬 것은 지키고, 가릴 것은 가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려운 일이니 함께 노략하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