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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낼만한 집에서는 내고, 쓸만한 집에서는 써야 돼

by Aphraates 2008. 7. 28.
 

내수경기가 꽁꽁 얼어 붙어 이 삼복더위에 찬바람이 쌩쌩 분단다.

좋은 시절이라면 그런 찬 바람은 더위를 식히는데 제격이겠지만 어려운 시절이어서 더위에 얼어 죽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걱정이다.

그 찬바람의 원인은 다 아는 사실이다.

고유가, 곡물가 폭등, 원자재가격 상승 등 국제적인 영향으로 치닫게 된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절약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영향으로 경제 상황이 너무 경직되다 보니 주머니를 열어 돈을 풀을 만한 사람들도 주머니를 꼭 닫고 눈치만 살피고 있다.

경기가 부진할 때는 일부러 정부에서 부동산 거래 활성화등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쓸만한 사람들이 돈을 써서 경기가 잘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말려도 안 듣던 해외 여행객들이 눈에 띠게 줄었을 정도로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여 잔뜩 웅크리고 사태추이만 보고 있으니 더 악화되는 것이다.


낼만한 집에서는 내야하고, 쓸만한 집에서는 써 줘야 한다.

그리하여 없는 집에서는 그 부스러기라도 입맛을 다시고 현상 유지를 하여 연명하며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

그렇다고 남들의 빈축을 사며 호화롭게 살고 낭비하면서 돈을 바람에 뿌리듯이 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에 걸려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한테까지 친절하고 편리하게 먹고 살길을 열어줘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이 안 돌아가는 경기 상황에서 전에 하던 것도 안 하면서까지 후일의 위험에 대비한 보험을 든다던가 하면 더 안돌아 가고, 평상시에는 정상적으로 지불하던 노임 같은 것도 혹시 몰라서 뒤로 미룬다면 더욱더 위축되고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면이 보인다면 대승적인 차원에서 할 것은 해야지 낼만한 집에서 안 내고 할만한 집에서 안 하면 보기 안 좋다.


오늘 우리 성당에서 총회장님 댁 아이 혼례미사가 있었다.

오랫만에 있은 혼례미사여서 그런지 감이 새로웠고, 앞으로도 성당에서의 혼례가 종종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신혼부부의 사랑과 행복을 기도드리고, 혼주 내외분께 축하를 드린다.

또한 우리 성당 교우 분들은 물론이고 혼례미사에 참석해주신 분들과 신랑과 신부 양측을 아는 모든 분들의 바라는 마음도 한결같이 나와 같으리라고 믿으면서 그를 전해드리고 싶다.


오늘 잔치에서 한 상 잘 때려 먹었다.

나의 진수성찬이라고 해봐야 국 수 한 그릇에 김치 몇 조각이면 그만이지만 마음이 푸근하고 음식이 푸짐하게 느껴졌다.

교우 분들도 혼사집과 친하고 안 친하고를 따지지 않는 거 같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연회장으로 가 푸짐한 잔치 음식을 들면서 즐거워들 하셨는데 그 그림이 보기 참 좋았다.

주임 신부님께서 성당 마당 입구에 서시어 교우들한테 국수를 먹고 가라고 하시는 적극적인 홍보의 영향도 컸고, 이 기회에 교우 분들한테 국수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싶은 총회장님 댁의 마음도 통하여 많은 분들이 참석하신 것 같았다.

나중에는 국수가 부족하여 별도 요리를 대접했다는 후문이었는데 빗나간 국수와 음식 수요예측이나 워낙 더운 날씨에 따른 약간의 행사진행 차질 같은 것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간단한 국수 한 그릇도 나누어 먹을 때가 있는 것이지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회에 낼만한 집에서는 낯을 내기 위한 베풀음과 나눔의 차원이 아니라 울어나는 마음으로 그런 자리를 만들었고, 그런 호의에 아무런 부담감 없이 참석하여 국수 한 그릇씩 나누며 축하해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 받을 일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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