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을 가릴 거 없고, 격식 차릴 거 없이 편안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무한경쟁과 수많은 이해타산을 따지며 살아도 버거운 이 세상에서 호불호를 따지지 않고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현실을 인정하며 보다 나은 날들을 위해 함께 나아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어서 그런 기회를 잡는 것은 다 나 하기 나름이 아닌가 한다.
“다윗의 망대” 팀의 500주회 돌파 기념 소연(小宴)이 조프님네 갈마 카페에서 있었다.
초청객, 불청객을 합쳐서 스무 분이 넘게 오셔서 쁘레시디움 10년 성상의 발전된 모습을 축하하였다.
단장님을 비롯한 간부와 단원들은 물론이고 동네 공갈 이장(里長)님도 오시고, 흘러간 단장님과 이웃 동네 단장님도 오시고, 지역 총사령관과 후보 선수들도 오시고, 다른 동네 선수들도 공차다가 운동복 차림으로 오시었다.
그리고 멀리 떠나가신 단원도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셨다.
주인과 객이 따로 없고, 예의 바르게 격식을 차릴 번거로움도 없었다.
날씨는 덥고, 모기는 대들고, 송아지만한 개는 옆에서 짖어대지만 그래도 가든파티인지라 풍치가 있었는가 하면 황기를 넣고 푹 삶은 토종닭 백숙 고기와 파를 총총 쓸어 넣은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한 것이 가히 일품이었다.
음식 만들고 상 차리는 것은 형제님들이 다 할 테니 자매님들은 숟가락만 들고 앉으시면 된다고 하였다지만 그거야 노처녀 시집가기 싫다는 거짓말보다도 더 한 것이니 믿을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은 일하는 시늉만내고 먹기만 하였다.
결국은 카페 주인네 자매님, 단장님과 부단장님네 자매님들께서 혼자 움직이시기도 더운 모습으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서빙해주시느라 땀을 흘리셨는데 그래도 하늘같은 서방님들이 드시는 것만 봐도 즐거워하시는 표정들이셨다.
모여서 나누는 대화도 참 좋았다.
모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상적인 대화들이지만 다 사랑이 넘치고, 피와 살이 되는 양식의 이야기들이어서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자는 제안과 제창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같은 신심단체에서 기도와 선교와 봉사에는 등한시하고 일반사화 단체 모임처럼 모임과 친교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고 우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심단체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그를 합리화시키고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책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고 그를 실천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먹는데 정든다고 핑계를 대며 빗나갔다가도 바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므로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려면 명확히 가릴 것은 가리고, 따질 것은 따지며 냉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내 입장에만 서서 시도 때도 없이 규범을 들이대며 너무 계산적으로 나오면 인간미가 없고, 일도 제대로 안 된다.
초청을 안 받았지만 그 집 앞을 지나다보니 맛있는 냄새가 나서 들어가 한 볼따구니 얻어먹고 설거지 대신 넋두리라도 떨고 나오고, 40대 후반의 장년한테 제일 나이 어린 막내가 심부름 안 하고 자리 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 지르자 이럴 때 막내좀 아껴주라며 꼼짝 잘싹도 안하며 짜그락거리고, 혓바닥이 완치될 때까지는 음주와 과로를 삼가라는 주치의의 이야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기념식을 갖기로 했는데 참석해 달라는 아우님들의 이야기를 더 비중 있게 들으며 땀범벅이 되어 벌컥벌컥 마셔대는 모습 모두가 주객과 격식을 가릴 거 없는 사랑이 넘치는 정겨운 모습이었는데 일일이 가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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