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올림픽 경기 남자 양궁에서 이태리와 우리나라가 마지막 화살 3발씩을 남겨두고 동점이 되었다.
어느 편이든간에 세 선수 중에서 한 선수만 삐꺼덕 하면 그냥 끝나버릴 판이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곳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것이 사람 피가 마를 정도다.
정정당당하게 시합하고 응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어디 그렇게 되나?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고약한 심보이지만 다급하다보니 그런 거 저런 거 가릴 겨를이 없다.
먼저 이태리 선수가 사대(射臺)에 섰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며 실수하기를 바랐다.
당신들은 실수해도 별 탈이 없겠지만 우리들한테는 생사의 기로에 선 것만큼이나 심각하니 양보하면 안 되겠니?
당신이구나.
당신, 술 사줄게 빨간 판에 대고 쏴라.
어, 골드네.
말 참 안 듣는구나.
술 산다고 했던 소리는 없던 걸로 하자.
다음은 누구냐?
당신이로구나.
그럼 당신이 좀 대신해서 빨간 판에 대고 쏴 줄래?
잘 했다고 칭찬해 줄 테니 꼭 그렇게 좀 해 주라.
당신만 믿는다.
어, 당신도 골드냐?
어지간히도 말을 안 듣는 구나.
그렇게 말을 안 들으니 칭찬은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실망스럽다고 얘기할 수도 없으니 빨리 내려오기나 해라.
마지막은 누구냐?
우리를 살려 줄 당신이구나.
정말 당신만 믿는다.
당신이 좀 해 줘라.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하면 아주 착한 사람이라고 방방 띄워줄께.
7점이구나.
아주 잘 했어! 말 잘 듣는 착한 사람 띵호아다.
이제는 한국선수가 사대에 섰다.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여자양궁 국가대표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해설자는 남 의식하지 말고, 잘 쏘려고 할 것도 없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하라고 주문한다.
선수들은 무아지경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관중과 시청자들은 꼭 얼토당토 안 하게 실수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마조마하여 제발 빨간 판에 맞히는 것만큼은 안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첫 번째 선수가 호흡을 가다듬고 조준하는가 싶더니 활시위를 놨다.
9점이다.
썩 마음에 드는 점수는 아니지만 빨간 판으로 안 날아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두 번째 선수가 대범함 표정과 몸동작으로 조준을 하여 쐈다.
골드 10점이다.
역시 뭔가는 해내는 게임메이커로 믿음직스럽다.
마지막 한 발의 선수가 나왔다.
제발 조준하다 활시위를 놓쳐서 빨간 판으로 보내는 최악의 상황만 연출하지 마라.
그러면 무조건 금메달이다.
9점이다.
우리들의 금메달로 게임 아웃이고 3연속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축제의 분위기이다.
우리 선수들도 잘 쐈지만 손님들이 실수하는 바람에 우승한 것이다.
해설자는 경기를 하면서 심리적으로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것도 작전의 하나라며 열변을 토한다.
농담이었지만 술 사줄게 빨간 판에 대고 쏘라고 하였던 것이 영 맘에 걸린다.
우리들 주문대로 그렇게 실수한 것은 아니겠지만 실수하여 우승을 하지 못한 그 어린 선수의 심정이 어떨까?
너 때문에 금메달을 놓쳤다고 원망을 얼마나 들을까?
흥분해서 별 희한한 응원을 하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뒷맛이 씁쓸하다.
이기고 지는 것은 차후 문제라고 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고 스포츠 정신이라고 하는데 그냥 해 보고 들려오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은 그런 거 없이 월등하게 앞서 나가며 우승하더만서도 남자 선수들은 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겨 응원객을 국수주의(國粹主義)외 이기주의(利己主義)의 못된 사람들로 만들었는지 애국적인 응원이었다고 하기에는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통 (0) | 2008.08.14 |
---|---|
아니, 이 시간에? (0) | 2008.08.13 |
제스처(Gesture) (0) | 2008.08.12 |
뽕짝이 척척 잘 맞으면 (0) | 2008.08.11 |
할머니, 우리 계약은 아직도 유효하지요? (0) | 2008.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