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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아니, 이 시간에?

by Aphraates 2008. 8. 13.
 

이른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면 셔터를 올린 오피스 빌딩은 물론이고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다.

문을 열었다고 해 봐야 24시간 영업을 하는 김밥집이나 편의점 정도이고, 심야 영업을 하던 업소들도 그 시간쯤에는 문 앞의 너절한 것을 대충 치워 놓고 문을 닫은 상태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를 타려고 정거장으로 다른 길로 가다보니 약국 문이 열려 있어서 이상했다.

그 약국은 약사가 여러 명 되는 대형 약국으로서 학교 동창 친구가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배탈 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동네 작은 약국인데 아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약국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 같은데 이 시간에 벌써 문을 열다니 이상했다.

그래서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연 것이 아니고 아마도 종업원이 먼저 나와서 영업 준비를 하는가 보다 하고 흘낏 쳐다봤더니 그게 아니라 약국 대표인 그 동창 친구가 단정한 넥타이 차림으로 뭔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어서 더 이상했다.

갖고 있는 체인 약국이 몇 개이고, 빌딩을 포함하여 재산도 상당하고, 약국 경영도 잘 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주인장이 저렇게 일찍 나와서 문을 열어놓고 있다니......, 그래야만 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친구지만 존경스럽고, 자만하지 않고 약사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좋은 쪽으로 생각이 되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엊그제 갔던 소고기 집과 약국이 비교가 되었다.

소고기 집은 지난 주일에 독일 맥주를 기분 좋게 마시고 진짜배기 소고기 한 점에 소주 말뚝 고푸로 한 잔씩 더 하자고 찾아간 집이었다.

고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뭐 하는 것이 영 어설프고 손님 귀한 줄을 모르는 태도여서 술맛이 삭 가셔버렸다.

맛있게 먹은 알프스 빙하 물로 빚은 독일 맥주가 아프리카 난민촌의 흙탕물로 빚은 토속주로 변할 거 같았다.

식당 면면이 못 마땅하여 심사가 뒤틀렸다.

별도로 돈을 받는 반찬은 손을 댈 것이 없고, 뭣 좀 가져오라고 하면 우리 집에는 그런 거는 없다고 삭 잘라버리고, 그럼 한 잔 더 해야 하니 한 점 먹어보고 시킬 테니 이 집에서 제일 자신 있는 고기로 가져오라고 하였더니 아니올씨다인 것을 가격표를 붙여서 내와 뭐라고 하니까 안 먹을라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접시채 가져가버리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먹을 만한 자리가 못되어 중간 계산하고 나와 버렸다.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이 너무한다고 서운했을지 모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이 어려운 판국에 좋은 고기 좀 먹어보겠다고 처음 찾아온 손님들한테 너무 소홀한 것 같아 기분 나빴다.

소고기 한 점이 소고기 열 근도 되고 소 한 마리도 될 수 있는 것인데 손님이 주인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형국이었으니 성질이 안 나면 사람이 아니었다.

한 아우님이 “손님은 왕이다” 라는 말을 전혀 알지 못하는 신출내기 영업집이라고 호통 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고 끝내고 나서 다른 집에 가서 마무리하였지만 서운함이 풀리질 않았다.


주인은 우리 같은 손님한테 안 팔면 그만이고, 손님은 그런 집 얼씬도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팔아 주겠다고 들어온 손님도 내쫓는 식당과 찾아오는 사람 없지만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약국이 비교가 되었다.

과연 어느 편이 이 경쟁사회에서 성공하는 편일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그를 실천하지 못하다니 영업의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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