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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봉변

by Aphraates 2008. 9. 11.

면전에서 삿대질을 받으며 망신당하는 것만이 봉변이 아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보이지 않는 쑥떡 먹임을 당하는 것도 봉변이다.


금전적으로 직접 손해를 보는 것만이 봉변이 아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도 봉변이다.


아무런 잘 못도 연관도 없는데 미친개한테 물린 것처럼 동네가 다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떠는 황당무계함만이 봉변이 아니다.

한다고 열심히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것도 봉변이다.


이순(耳順)이 넘은 노파가 지천명(知天命)의 젊은 피로부터 이상한 꼴을 당하여 후송되고, 고희(古稀)의 노익장이 불혹(不惑)의 사람들 속으로 숨어 들어가 보고는 침을 흘리는 추태를 보이는 것만이 봉변이 아니다.

저러고서도 어찌 산목숨이라고 하는 것이지 나이 값 못한다고 눈총 받는 것도 망신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나 그 동안의 전적으로 보나  도저히 상대가 안 되어 초반에 승리로 끝낼 것이라고 장담하던 먼 나라 팀으로부터 경기 도중 내내 시달리다가 결국은 근소한 스코어 차이로 패한 운동 경기 팀의 코 빠진 것만이 봉변이 아니다.

강한 팀으로부터 완패당하고 자기 팀의 문제점을 들추어내며 내분을 일으키는 것도 봉변이다.


손님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푸짐한 잔칫상을 벌여 놨는데 손님이 없어 지나가는 개한테 너라도 들어오라고 정중하게 절하였더니 본체만체 하는 것만이 봉변이 아니다.

주제파악을 하고 손님이 왜 없는 것인지 헤아려야지 무턱대고 전만 펼치면 되는 줄 안다며 혀를 차는 이웃이 있는 것도 봉변이다.


이렇듯이 보이지 않고 표 안 나는 은근하고 간접적인 부끄럽고 남사스러운 봉변이 많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봉변당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봉변이 없기는커녕 봉변당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다가 봉변을 당하면서 사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러나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 자기 자신들의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봉변당하는 자식(子息)

당신, 착한 자식 맞아?

그만한 가정에, 그만한 학력에, 그만한 능력이라면 칼을 빼 들었으면 호박이라도 내려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 것 저 것 계산하면서 칼만 들었다 놨다하며 비지땀만 흘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면 그는 이미 자신(自信)을 잃고 자신(自身)을 상실하여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가장(家長)

당신,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 부모 맞아?

새끼들을 낳았으면 잘 간수하고 이끌어야지 잔뜩 퍼질러 놓기만 하고 네들 살 길은 네들이 찾아야 한다고 억지 변명만 늘어놓고 있잖아?

술 한 잔 걸친 아버지가 공부도 안 하고 자꾸 밖으로만 나도는 아이들을 집합시켜 무릎을 꿇히고 잘 해야지 앞으로 그랬다가는 그냥 안두겠다며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몇 마디 안 했는데 아이들이 말을 자르더니 고개 빳빳하게 세우고 반발하였다.

어머니만 죽도록 고생시키고 아버지가 여태까지 우리들한테 해 준 게 무엇이 있다고 큰소리냐며 아버지나 잘 하라고 면박한다면 아버지는 이미 가장으로서의 위엄과 존경심이 땅에 떨어져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친구(親舊)

당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백년지기 맞아?

몇 십 년 동안 고향은 물론 동창회에 코배기도 안 보이던 친구가 권력과 부를 휘어잡고 나자 나타났다.

아무리 어렸을 적 친구들이지만 너무 차이가 나 함께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거금의 찬조금이나 내고 자리를 뜨려고 수행한 비서한테 그렇게 시켰다.

그러나 그를 안 친구들은 차에 오르려는 그 친구를 불러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네 뜻은 고맙지만 사절한다.

우리 동창회 기금도 넉넉하고, 비록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지만 먹고 사는데 지장 없으니 그런 거는 걱정할 거 없다.

저 돈은 갖고 가서 네들 식구 호위호식하거나 네 또 다른 출세를 위해서 쓰도록 하고 가능하면 이런 식으로는 동창회에 안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 친구는 이미 다른 친구들로부터 왕따 되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연인(戀人)

당신, 백년해로할 연인 맞아?

두 남녀는 자기 살점이라도 떼어 줄 듯한 연인사이다.

그런데 몇 년 간교 제를 하여 알 거 다 알고 맛 볼 거 다 맛보고 약혼과 결혼을 하려고 하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끼어들었다.

만날 때 마다 입장 곤란한 문제로 인하여 “네가 먼저, 나는 나중에”하면서 쩨그락거리다가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사랑싸움이라면 모르지만 사랑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히고 �혀 건드려서는 안 될 민감한 문제까지 들춰내며 이별의 수순을 밟는 단계로 접어 든 것이라면 그 들은 이미 연인의 사이를 떠나 서로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부하(部下)

당신, 빠리빠리한 부하 맞아?

머리가 팍팍 돌아가야 하고, 손발에 쉴 틈이 없이 등어리 콩 튀게 바쁜 조직에서 조직원이 바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 부여 받았다.

그러나 기본 지식이 미천하여 그 과제가 뭘 하라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누구한테 물어볼 상황도 안 되어 서랍에 넣어 두고 뭉개면서 어떤 핑계를 대 그 위기를 모면할 것인지를 고민한다면 그 조직원은 많은 장점이 있을지라도 낙오되어 대내외적으로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상사(上司)

당신, 근엄한 상사 맞아?

실적이 부진한 것을 만회하기 위한 부서회의가 소집되었다.

임원회의에서 실적부진을 책임추궁당하여 독기가 잔뜩 오른 부서장이 부진 사유를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서류를 집어던지면서 겨우 이 정도 밖에 못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부서원들은 열 받을 것은 무능하고 보신주의인 상사를 만나 죽도록 일하고도 인정 못 받는 우리들인데 당신이 왜 화를 내느냐며 사장 앞에 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맞장 토론 한 번 하자고 고삐를 잡으면 상사는 이미 명령권을 상실하여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구장(區長)

당신, 동네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구장 맞아?

가는 곳마다 말썽 많다는 소문을 몰고 다니던 구장이었다.

그러나 우리 동네로 와서부터는 그런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모습이 될 줄 알았고,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동네에서는 그런 것이 안 통하고 분란만 일으킬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였다.

그런데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구장이라고 하기에는 부적했다.

하라는 구장일은 안 하고 구장의 권한을 내 세 우고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엉뚱한 짓만 하고, 돈만 밝히고, 동네 사람들과 싸우고 마음의 상처를 입혀 이사들 가고, 반장들과 이웃 동네 사람들은 슬슬 피하기만 하고, 누구 하나 막걸리 한 잔 사는 사람 없고, 자기 말 잘 듣는 몇몇 주책바가지 조무래기들만 데리고 다니면서 욱짝거리고, 다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느냐고 손가락질 하지만 인생이 불쌍하여 모른 체 하며 인내한다면 그 구장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장군(將軍)

당신 보기만 해도 적군이 오금을 절일 위풍당당한 백전노장 맞아?

전쟁터에서 장군이 진군 앞으로를 명령했다.

그런데 병사들이 그 명령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총칼을 놓고 장난치며 장군 당신이나 혼자 나가서 열심히 싸우라고 히죽거린다면 그 장군은 이미 장군으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봉변을 당한 것이다.


봉변당하는 신앙인(信仰人)

당신,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는 신앙인 맞아?

절대자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희생과 긍휼로 어린 양떼를 잘 돌봐야 하는 착한 목자로서 본연의 역할은 등한시한 채 세속에 물들어 엉뚱한 거에 맛들이며 몽둥이를 휘둘러 양떼를 흩어지게 하는 당신, 열과 성을 다하여도 절대자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조차도 힘들거늘 제들만을 위하야 편한대로 해석하고 행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당신 할 말 있으면 해봐.


봉변당하는 교육자(敎育者), 백년대계를 꿈꾸는 스승과 제자  맞아?

봉변당하는 계원(契員), 상부상조하는 계주와 계원 맞아?

봉변당하는 국가(國家), 한 나라의 백성과 군주 맞아?


칭찬받는 일도 많은 세상에 어찌 봉변당하는 일 만 떠오르겠는가 만은 웃을 일보다는 우울한 일들이 자꾸 튀어 나오는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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