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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어르신께서는 강령하시지?

by Aphraates 2008. 9. 10.

아버님께서 작고하신지도 십 년이 다 돼 간다.

건강하신 걸로 따지면 지금까지 생존하시어 백수(白壽)를 목전에 두시고  상수(上壽)를 바라보실 만도 하셨을 것이다.

허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였듯이 사람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중에서는 장수하신 편이지만 그래도 좀 더 살으셨어야 한다는 서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버님이 안 계시니 아버님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고, 구식으로 안부를 물을 만한 사람도 없다.

전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친척 어른이나 다른 어른들을 찾아뵈면 맨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어르신께서는 강령하시지?” 하고 아버님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러믄요. 진지도 잘 드시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안 다니시는 곳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오히려 아저씨를 걱정하십니다” 라고 거침없이 말씀드리곤 했었다.

그런데 여름철에 병상에 누우시어 겨울철에 돌아가셨으니 내가 어른들께 그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그 몇 년 사이로 그런 안부를 물으시던 어른들도 다 돌아가시어 이제 그런 안부 인사를 드릴만한 분도 안 계시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전에는 다른 곳으로 출장 가서 업무를 보기 전에 그 곳의 장(長)이나 선배님들 사무실에 들려 인사를 드렸다.

그 때 상사들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O처장(소장)은 안녕하시지?” 라는 간접적인 안부 인사였고, “네,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하는 것이 나의 대답이었는데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 할 황혼기여서 그런 인사를 주고받을 기회와 사람도 없다.

그런 옛날식 인사가 아직도 좀 통하는 곳은 성당이다.

다른 성당에 가거나 단체 행사에 참석해서 연고가 있는 성당 교우들을 만나면 그런 식으로 인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O신부님(회장님) 잘 계시지요?” 하는 안부를 묻고, “네, 잘 계십니다” 하는 대답을 한다.


어디서나 그렇게 정중하면서도 부담 없는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서 남 얘기를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며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뿌리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인사 당사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좀 불편하고 어색하더라도 그런 인사 예절은 지켜져야 하겠다.

그렇지 않고 좋은 인사 대신에 “아이고, 우리 할아버지 말씀도 마세요. 침해가 어찌나 심한지 같이 늙어가는 집안 얼느들 죽어나세요” , “우리 캡틴요? 얼마나 신경질적이고 아랫사람들을 들들 볶는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우리 회장님도 한 물 가셨어요. 사리분별 명확하고 생각이 참 깊었는데 망령 끼가 있는지 엉뚱한 일만 저지르고 고집만 세 졌어요” 같은 소리들이 잦아진다면 시끄러운 동네에 심난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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