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집에 가면 호스티스로부터 “차린 거는 없지만 많이 드세요” 라는 정중한 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 잔치는 좋은 예감이 든다.
말은 그렇게 겸손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푸짐하게 차린 것이 대부분이어서 한 상 잘 차려 먹는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잔치가 벌어지기 전부터 소리가 크고, 소문이 요란한 집은 별 거 아니다.
대갓집이니 대단한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느니, 손님들이 깜짝 놀랄 이벤트를 준비 중이라느니,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을 외국에서 공수해 오느니, 1인당 식사비만 해도 얼마가 들어가느니, 유명한 실내악단과 사회자를 초청하느니......, 얼마나 거창할 것인지 짐작이 안 가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기대와 궁금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잔치에 가보면 분위기도 썰렁하고, 먹을 것도 별로 없어서 그 실망스러움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소리를 듣는다.
상전 집 잔치에 갔던 하인처럼 잔뜩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을 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김치와 고추장에 밥 비며 먹으며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틀릴 말 하나 없어. 그렇게 간소한 잔칫상이 그 집의 가풍인지는 모르지만 손님 생각은 안 하고 자기들 위주로 차린 것은 예의가 아니지. 있는 사람들이 더 한다니까 그러네” 하면서 언짢아한다.
생각만 하고, 보기만 해도 풍성하고 배부르다는 한가위다.
화창한 날씨에 잘 익어가는 들녘의 오곡백과를 보니 올 해도 배부른 한가위기 될 거 같기는 한데 어쩐지 헛배 부른 한가위가 아닌가 하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선물꾸러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적고, 불이 낳게 들랑거리던 택배들도 많이 안 보이는 거리 풍경이 전 같지가 않다.
대대적인 판촉을 하는 대형 매장들도 예전 같지 않고, 추석 대목을 보고 만반의 준비를 한 재래시장도 붐비지 않단다.
상인들과 공무원들이 손발 벗고 나서서 재래시장을 산뜻하고 편리하게 새로 개장했고 물건 값도 저렴하니 많이 이용하자고 목이 아프도록 소리 지르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재래시장을 서민경제의 표본이라 여기며 그를 되살리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지만 물건 값이 싸고 질이 좋으면 애써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꼬이게 돼 있고 그게 시장경제의 원리인데 뭘 저런 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단다.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지만 경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장상인들을 돕자는 취지이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를 근간으로 하여 경재활황을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하니 대형 매장이고 재래시장이고 팍팍 돌아갔으면 좋겠다.
누구나 풍성한 한가위를 기대하지만 살림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현실이 그리 녹녹치가 않다.
소리만 요란했지 입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것이 헛배 부른 한가위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오래 전 명절날에 처음 헛배가 부를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헛배 부른 것도 배부른 것인지 너무 자주 헛배가 부르다 보니 터질 거 같아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귀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마음보다는 물질이 앞서는 요즈음은 쓸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명절이 명절답지 못 하다.
언론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붕 띄우며 요란을 떨지만 그런 분위기에 젖을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아닌데 왜 저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런데다 한 편에서는 헛배라도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인지 근검절약할 것도 없는 사람들한테 검소한 한가위를 보내자는 캠페인과 규제가 만발하고 있으니 네들이나 배 터지게 먹으라는 막말의 위화감까지 일고 있다.
아니, 뭐 가진 게 있고 그럴만한 위치가 돼야 양말 한 짝이라도 오고 가는 것인데 쥐뿔도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뭘 어쩐다고 그런 것들을 눈과 귀가 아프도록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인지 불만이다.
그러나 너무 흥분하지 말고 생각을 좀 해야 한다.
내가 바로 불우한 이웃인데 어디 가서 불우한 이웃을 찾으라는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하며 이것은 난센스 코미디라고 하는 것은 너무 비약적이다.
남아도는 것을 나누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다.
모자란 상태에서 나누는 것이 진정한 공동체 정신인데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알아야지 네가 불우한 이웃이라고 한다면 어폐가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아직도 옛날 사고방식에 젖어 금품이나 선물을 주고받을지 모른다며 그런 부조리가 발견되면 일벌백계한다고 하니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고 없는 것을 먹여주는 격이니 헛배만 부를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을 일일이 가려서 당신은 불우한 사람, 당신은 안 불우한 사람 하면서 옥석을 가려 명절 분위기를 살릴 수는 없는 것이고, 작은 것을 허용하다보면 크게 된 아예 없는 것으로 하고 전체적으로 검소한 명절을 보내자는 방향으로 나가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너무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다 보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캠페인과 지시사항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무차별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그러니 우울하고 초라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헛배만 불리고 있으니 아직도 그런 풍조가 남아있는 구석이 있다는 의구심을 들게 하여 위화감만 조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
오래 전 한가위 때에 한탄하던 대모님이 생각났다.
다 먹고 살만 한데 명절이라고 해봐야 사과 봉다리 하나 들고 오는 사람 없다고 혀를 차던 대모님이었다.
제사고 음식이고 대모님이 다 알아서 잘 하시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며 위로를 하다가 내가 생각해도 너무들 하는 거 같다고 동정하기도 했는데 사회 분위기가 그러니 가족들까지도 빈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삭막한 인간사회를 만드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헛배 부른 한가위이지만 즐거움도 있다.
해마다 비슷하지만 내가 전하는 추석선물은 부피는 크지만 돈으로 치면 작은 것이다.
내가 부자라면 좀 더 나은 선물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럴 형편은 못 되고 매년 챙겨오던 분들한테 살며시 전해 드리는 작은 추석선물이고, 나의 보신을 위한 형식적인 선물도 아닌데 정성이 중요하지 선물의 크고 작음이야 아무렴 어떠냐고 편하게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 며칠 전에 주문한 선물 택배가 도착하였다.
배달된 채로 아파트 현관에 그대로 놔뒀는데 누가 보면 무슨 큰 선물이라도 하는 줄 알까봐 걱정이 되었다.
성당에 다녀와서 점심 한 술 뜨고는 그를 풀러 놓고 데보라와 함께 선물할 대상자 명단을 체크하며 정리하노라니 작은 선물이지만 그나마 주고 싶은 사람들 다 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처음 계산할 때는 그 정도 선에서만 하자면서 그만한 수량을 주문한 것인데 막상 그 정도만 하고 말려니 서운했다.
걸리는 사람 많고, 후원해야 할 곳이 자꾸 더 늘어나 생각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을 거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좀 더 아끼고 절약하여 이런 때 쓰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은 우리의 불찰이니 이것으로 마무리 짓자며 선물 정리하는 것을 끝내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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