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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궁금해 하지도 않아

by Aphraates 2008. 9. 6.

그 곳은 참 좋은 곳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져 발길이 뜸한 지 한 참 되었고, 그나마 조금 관심을 갖고 있던 얼마간의 사람들도 관심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 곳 돌아가는 난감한 상황을 보면 실망이 크고 고뇌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래서는 안 되는데 참 무심하기도 들 하다.

어지간하면 지난 개갈 안 나는 장마에 그 곳 어디가 무너지지나 않았는지 걱정도 될 테고, 웬만하면 지난 삼복더위에 그 곳 사람들이 어디 아프지나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간간히 어깨너머로 소식을 전해줘도 가타부타 일언반구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관심은 고사하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 곳에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다는데?

그럴 만도 하지.

그 곳 사람들이 뭘 새로 한다던데?

그 거야 할 만하니까 하겠지.

그대로 나가다가는 그 곳에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던데?

조금 그러다가 어떻게든 정립이 될 테지 그러기야 하겠나.

그 곳에 대해서 애착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아무런 관심이 없느냐고 불만도 적지 않던데?

그런 면도 있어 미안한 마음에 가끔은 나름대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반성과  시정을 하고 있지만 흥미가 사라진지 오래 되어서 잠시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내는 정도지 뭐.


한 쪽에서는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데 다른 쪽에서는 듣기 싫으니 그만 했으면 하는 눈치이니 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는 접었지만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지라 화제를 바꿔서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공동 관심사일지도 모르는 현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거기에도 흥미가 없는지 무덤덤하며 하는 말이 그 판이나 정치판이나 서로가 호형호제(呼兄呼弟) 하겠다며 경멸했다.

그 판과 정치판과는 확연히 구분되는데 그거고 저거고 말하고 싶지 않다며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발을 빼니 그 판이나 저 판이나 흐트러지고 말이 통하질 않기는 매 일반이다.


결국 소통의 중재 역할을 하는 촉진제는 신변잡기들이다.

아이들 문제와 가족들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이며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가정사 이야기, 각기 달리 독특하게 보낸 학창시절과 군대시절을 회고하며 그리워하며 그 때가 좋았다는 이야기, 직장 생활과 경제 활동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이럴 때 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근검절약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이야기, 어렵고 없이 살지만 틈새를 이용하여 해야 한다는 취미 생활과 국내외 여행에 관한 이야기......, 등등인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다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고 할 말들이 많아진다.

의기투합하기 때문에 또는 이견 불일치로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해지는 것이 빈번한데 끝날 쯤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툴툴 털고 일어난다.


말이 잘 통할 때는 화기애애하여 시시덕거리고, 말이 안 통할 때는 분노가 충만하여 멱살 잡고 싸우던가 해야 할 대화의 장이 왜 그렇게 침묵의 장으로 되었을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애착의 대상이 되고, 정성을 기울일 대상이 되고, 응원의 박수를 받는 대상이 되어야 할 그 곳과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꺼려하며 관심 밖으로 젖혀 놓고 물음표를 달아두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갖고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 거 같고, 뭔가는 문제가 있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얘기 나와 봤자 좋은 것이 나올 리 없고, 얘기해 봤자 거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기들의 취부만 드러내는 격이니 스스로 말문을 닫아버린 것 같다.

방향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여기며 침묵을 지키는 것은 어설프게 나서서 화를 자초하여 일을 복잡하고 크게 만드는 것이니 아예 안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그 들은 참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칼로 무 내려치듯이 잘라버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던 감동도 분노도 없으니 예외이지만 그 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감동 없이 분노만 일게 될 텐데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 대견스럽다.


어떻게 보면 소통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뚫릴 가망이 안 보이는 아주 심각한 중증 증세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그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보는 것도 아니고 평생 일어나고도 남을 일들일 텐데 사람들이 너무 착하여 맘에 담아두고 애 못 삭히는 그저 그런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시대는 그 시대대로 흐름이 있고, 그 동네는 그 동네대로 특성이 있다.

그 흐름을 잘 타고 특성을 살려야 그 시대 그 동네에 맞는 좋은 일들이 많이 있게 된다.

그러나 좋게 만든다는 전제와 논리를 내 세우며 그 시대와 그 동네에 안 맞게 억지로 갖다가 붙여 분란과 소요를 일으키고, 남들 가려운 데를 긁어주기는커녕 어디가 가려운 지 관심도 없지만 남들 아픈 데는 어찌도 그렇게 잘 아는지 콕콕 찔러댄다는 비난을 받는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을 해 가면서 자기는 어디가 가렵고 어디가 아프다면서 긁어 주고 만져주기를 바란다면 가소로운 표정을 짓거나 궁금해 할 것이 없다고 나오니 얘기하는 입만 피곤하다.


그러니 이 거 참 큰일 났네.

긴 터널에서 탈선한 채 오도 가도 못하고 시간이 더 할수록 절망만 깊어져서 이 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탄식만 하는 처량한 신세들이 되었으니 정말로 큰 일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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