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갔다가 점심식사를 하려고 길가에 있는 기사식당에 들어갔다.
기사식당은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든가 할 때 품위있이 가기에는 좀 그렇지만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메뉴가 가정식 백반이어서 우리들 입맛에 맞아 무난하고, 메뉴 선택에 고민할 거 없어서 좋다.
금방 한 토실토실한 밥, 바로 끓여 낸 시원하고 담백한 국, 갓 만들어 낸 생선요리, 윤기가 있는 김치와 나물 등 어머니가 차려주시던 밥상처럼 단순하면서 푸짐하다.
다음은 값이 저렴하고 빨리 나와서 좋다.
한 상이 사 오 천원 정도이니 싼 편이고,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이 몇 사람인 줄만 확인되면 테이블 자리에 앉아서 물 한 잔 마실라 치면 신속하게 음식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간단하게 한 끼 먹는 식당 분위기가 부담이 없어서 좋다.
대개는 길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오다가다 들리기도 편리하고, 식당 분위기가 단촐하면서도 편안하고, 주인을 비롯한 종업원들이 뭐든지 막 풔줄 것 같이 서글서글하며 후덕해 보인다.
입맛이 없을 때 홀로 한 술 뜨기에 기사식당 만한 곳도 없기 때문에 여러 식당들을 지나쳐 들리곤 한다.
하지만 요즈음은 기사식당의 트레이드마크인 가정식 백반과 편안한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아 기대에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입맛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은 기사식당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들어갔으니 그냥 한 끼니 때우고 나온다는 식으로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기사식당은 주로 운전자들이 이용하지만 그 운전자는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어설픈 기사도 간다.
오늘은 무슨 계모임을 하였는지 중년의 여자들 대 여 섯 명이 한 테이블에서 소란스럽게 식사를 하는 이색적인 모습도 있었는데 어떤 때는 연인들끼리 와서 한 구석에서 속삭이며 식사를 할 때도 있다.
문을 열고 기사식당에 들어서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써금써금한 남자가 어서 오시라고 인사를 하며 혼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빈자리에 앉자 바로 아주머니가 쟁반에 백반을 받쳐 들고 와 내려놓았다.
그 아주머니가 맛있게 들라 하고는 주방으로 가자 먼저 눈으로 쟁반을 한 번 훑어보았다.
반찬 종류가 많은데 어딘지 모르게 썰렁하고 맛깔스러워 보이질 않았다.
밥과 국을 포함하여 15가지였다.
그 중에서 내가 먹는 것은 국, 밥, 반찬 3가지였다.
메뉴 구성 만족도를 계산해 보니 5/15로 33%였다.
안 먹는 다른 반찬은 뒤로 밀어 놓은 채 젓가락도 안 대고, 5가지 만 먹었는데 입맛에 맛는 것은 1가지 뿐이었다.
메뉴의 메뉴 질과 신선함 만족도를 계산해 보니 1/5로 20%였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그 기사식당 음식의 종합만족도는 0.33X0.2=0.06으로 반올림해도 10%밖에 안 된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은데 재수 없이 그 기사식당이 걸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메뉴 만족도가 10%라는 것은 아무리 양보한다 해도 그 기사식당의 참패이자 나의 실망이다.
그 뿐이 아니다.
제복을 입은 기사들이 제법 왔다가 가던데 그들과 차별이 있었다.
그들은 단골인지 식사를 내 오는 아주머니한테 “아줌마 어제 먹던 그 거 다 먹었어요? 맛있던데 있으면 좀 가져다주고, 계란 프라이도 하나 해 오세요” 라고 말하면 아주머니는 “네, 네. 바로 갖다드릴게요”하면서 내다 주는 것이었다.
앞으로 오다가다 들리는 단골손님이 될지도 모르고, 많은 손님들을 몰고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우를 받아야 나 같은 첫 손님이 역차별을 받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시원치 않은 메뉴 만족도에 그런 것을 보니 기분이 언짢았다.
아니 여기가 정말로 전문기사들만 밥 먹는 곳으로 나 같은 뜨내기는 아무렇게나 한 끼니 때우고 사라지라는 거여 뭐여?
전문기사다 단골손님이어서 소중하게 모셔야 할 거 같으면 다른 손님 안 보이는 내실로 모셔서 산해진미를 주던 말든 할 것이지 벌건 대낮에 낯간지럽게 그러다니 기둥서방한테 보약 먹이는 것도 아니고 괘씸했다.
돈은 내가 내지만 감사하고 맛있게 먹어야 할 식사자리에서 마음이 불편하면 죄받을 거 같아서 언제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윤기가 없는 밥을 찬물에 말아 김치 하나하고 꾸역꾸역 다 먹고 일어섰다.
그런데 참패와 실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벽에 달랑 하나 붙은 가격표를 보니 백반이 오천 원이었다.
오천 원 짜리를 꺼내 주면서 “오천 원 인가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카운터의 남자가 한번 쳐다보더니 “OO운전 하세요?” 하면서 전문 기사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닌데요. 왜 그러세요?”
그러자 그 사람 왈 “OO 기사면 20% 할인하여 사천 원이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열불 나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여보시오 댁이 주인이세요? 주인장이 사람 봐 가며 공짜로 밥을 주던, 바가지를 씌우든 주인장 마음대로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그렇게 표 나게 사람 차별해서 어디 장사 잘 하겠어요? 그 사람들만 상대하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대 안 하겠다는 거요? 그럼 아예 간판에다가 기사식당이라고 하지 말고 일반 기사는 출입금지하고 전문기사는 서비스 100%라고 붙이지 그래요? 어렵게 일하는 사람들한테 잘 해 주는 것은 복 받을 일이지만 그 것도 표 안 나게 해야지 다른 사람들 보는데서 그게 뭣들 하는 짓이오? 내가 OO운전 한다고 했으면 천원 깎아주고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대접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인장이 내 말을 귀담아 들어도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장사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잘 생각해서 고칠 것은 고쳐보세요” 라고 싸 붙이고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식당을 나섰다.
주인장은 내가 나온 뒤로 재수 없다고 소금을 뿌렸는지 아니면, 그 손님 말이 옳다고 무릎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역차별 당하여 참 황당하고 기분 나쁜 시간이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남들 생각해서 표정관리도 할 줄 알고, 나쁘면 나쁜 대로 남들에게 피해 안 주려고 내색을 자제를 해야 세상 살아가는 도리에 맞는 것이다.
그런데 내 것 같고 내 맘대로 하는데 네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곤란하고, 언젠가는 똑같이 수모를 당하고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기사식당 주인장뿐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작가 홈페이지 : http://blog.daum.net/kimjyy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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