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좋고, 우리 집이 좋은 것은?
천륜(天倫)과 인륜(人倫)으로 그냥 좋은 것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몇 년이 지난 것 같은데 외신을 통하여 일간지에 게재된 사진 한 장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사진은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적 천으로 된 출입문을 걷어 올린 채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아프리카 최빈국의 흑인 여자의 사진이었다.
기아에 허덕여 뼈만 앙상한 흉측한 몰골의 사진은 종종 봐 왔기 때문에 그냥 넘기려다가 사진 타이틀이 “그래도 우리 엄마가 좋아” 라는 다소 이색적인 것이어서 눈여겨봤더니 젖 물은 아기를 내려다보는 엄마와 젖을 물고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가 그렇게 다정하고 천진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겉보기에 그랬지 사진에 달은 주석(註釋)을 읽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참한 모습이었다.
이 십 대 후반 나이의 엄마는 내전 때문에 다른 곳으로 피난을 갔다가 화재를 당하여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는데 성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양 볼은 물 뱄던 종이처럼 구겨지고, 코와 귀는 문드러지고, 입술은 커다란 꽈리처럼 부풀고, 목은 늙은 닭 벼슬처럼 늘어지다 굳어 있는 것처럼 보여 어떤 얼굴이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엄마가 백색인이나 황색인었더라면 화상 입은 것이 바로 표시가 나서 언뜻 봐도 괴물 같게 됐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흑인이다 보니 잘 표가 안 나 몰랐던 것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람의 목숨이 어떤 때는 한 방에 날아가는 파리 목숨처럼 약하지만 어떤 때는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질경이처럼 질기다는 데 그 엄마는 그런 처절한 모습으로 평생을 암울하게 살아야 한다니 참 질기기도 질기고 기구한 삶이라는 동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의 모습이 하나도 안 무섭게 느껴졌고,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에 대한 애착심을 더 갖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와 엄마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아기는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엄마의 무엇이 좋아서 그렇게 천진스럽게 바라다보고 있을까?
그리고 엄마는 다 부서진 염소우리 보다도 못한 집이 뭐가 좋다고 되돌아와 그렇게 편안하게 문간에 앉아서 젖을 물리고 있는 것일까?
그게 다 천륜의 모정(母情)이고 인륜의 귀소(歸巢)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아무리 까맣고, 화상을 입어 어떤 얼굴인지 분간이 안 되고,못 먹어서 몸이 말라깽이가 되었고, 땀내가 펑펑 날지라도 아무리 하얗고, 화장을 한 예쁜 얼굴이고, 잘 먹어서 몸에 윤기가 흐르고, 감미로운 향수 냄새가 풍기 사람보다도 좋은 것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엄마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작고, 허술하고, 지저분하고, 값 안 나가는 오지의 움막집이지만 크고, 완벽하고, 깨끗하고, 비싼 도심지의 집보다도 우리 집이 좋은 것은 집에 들어가면 맘이 편안해지고 안락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우리 엄마가 좋은 아기와 우리 집이 좋은 엄마에 대한 나의 추측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헌데 요즈음 그에 반하는 것들을 느끼고 있어 안타깝다.
아기가 젖은 물고 있지만 이게 우리 엄마인지 의심스러워 이상한 눈망울로 쳐다보고, 엄마가 집을 찾아오긴 했지만 이게 우리 집인지 낯설어서 불안한 눈초리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형국으로 천륜과 인륜의 사랑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좋고, 우리 집이 좋은 것은 그냥 좋은 것이지 어떤 이유와 조건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황량하게 사막화가 되어가는 것이고, 그를 막아낼 방법은 없는 것인지 번민스러운 것인지 스위트 홈(Sweet Home) 실천 운동이라도 전개해야 될 모양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뭐 했는지 모르겠다 (0) | 2008.09.05 |
---|---|
차별도 이지가지 (0) | 2008.09.03 |
봉(奉) 군 (0) | 2008.09.01 |
안 그럴 수 없겠니? (0) | 2008.08.31 |
완전히 골동품이네 (0) | 200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