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위 공무원으로 승진하여 일선 기관장으로 나가게 됐다면서 연락이 왔다.
먼저 축하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불리한 지연과 학연을 잘 이겨내고 승승장구하니 장한 일이라며 다들 잘 나가는데 나는 여태까지 뭐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네가 어때서? 너처럼 살면 되지 얼마나 잘 살려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알다시피 나도 여기까지 올라오긴 하였지만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 줄 너도 잘 알잖아? 공직 생활에 전혀 불만이 없고, 천직으로 알며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했다. 그러나 서운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 나름대로 이 분야의 최고라는 프라이드도 있고 인정도 받았지만 젊은 상관들이나 국회의원들로부터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 나무라듯이 질책을 받을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네가 어렵게 자수성가한 고위 공무원이 맞고, 수많은 부하 직원과 관련 기관을 대변하는 부서장이 맞고, 아내와 장성한 아이 셋을 둔 가장이 맞느냐? 하는 한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라니까” 라고 하였다.
이어서 “그런데 말이다, 그런 생각은 내가 부러워하는 윗분들도 마찬가지더라. 며칠 전에 미국 공화당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44세의 여자 주지사가 지명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글쎄 우리 직속상관이 회의석상에서 뭔가를 한 참 생각하는 듯 하다가 불쑥 하는 말이 도대체 그런 여자는 얼마나 똑똑하고 잘 났기에 그 나이에 그 자리까지 가느냐며 부럽다는 거야. 애들도 다 자라지 않았을 젊은 엄마가 초강대국의 부통령 후보가 됐으니 대단한 여자라고 동감하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명문대와 고시 출신의 젊은 엘리트로서 별 애로사항 없이 잘 나가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하더라. 상관 말에 동조하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은 어때서? 올라갈 때까지 다 올라가 놓고서 그러시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사람의 아름다운 본성인지 사악한 욕심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욕망은 끊임이 없어서 도저히 채워 질 수가 없는가봐. 그러니 너도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시간되면 내 사무실에 한 번 들려라. 오랜만에 소주나 한 잔 같이 하자”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 위로의 말을 듣는다고 낮은 사람과 중간 사람이 있어야 높은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자위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상사와 부하의 틈바구니에 띠어서 잡다하고 조잘한 것들로 인하여 마음 상해야 하는 입장이 나아질 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끔 내가 다른 방향으로 살았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후회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오세훈 변호사가 약관 40대 중반의 나이로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부임하였을 때 말단 동서기로 시작하여 중견 공무원이 되어 중요 보직을 맡고 있는 후배로부터도 들었다.
내가 나이 먹었다는 생각은 못 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출세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그 때 서울에서 우연히 그 후배를 만났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금도 시청에 다닌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어느 부서야? 꽤 높게 됐을 거 같은데”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후배가 “본청 OOO실 OO담당 서기관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대단하네. 충청도 촌사람이 그 정도면 출세했네. 그 나이에 서기관이라면 빠른 승진인 거 같은데 할 수 있으면 계속 승진하기를 바라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후배가 “비고시 출신으로 승진이 약간 빠른 편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서열이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비록 선출 정무직이긴 하지만 우리 시장님은 저보다도 나이가 적으시지만 네 단계 위에 게시잖습니까? 공직 사회에서 한 단계 따라잡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네 단계라면 감히 쳐다보지도 못 하는 위 단계입니다” 라고 하면서 웃었다.
늘 그래 왔지만 오늘도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조직을 직급과 연공서열을 파괴하여 서구식의 능력 위주 체제로 개편한다고 한다.
흐름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고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인지는 좀 기다려봐야 알 거 같다.
어떻게 개편이 되더라도 그만한 자질과 능력이 있어서 그만한 자리에 오른 사람이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 하루아침에 몇 단계 아래 자리로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 오를 수 있으면 오를 데까지 올라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나는 여태까지 뭐 했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이나 하고, 그 정도면 훌륭하지 네가 어때서 그러느냐고 의례적인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성공하지 못한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몇 단계 더 오른 사람들은 젊은 부통령 후보나 시장에 비하면 자기들도 조족지혈이라고 아쉬워하지만 그런 경우야 불가사의한 일처럼 지극히 드문 일이니 예외로 해야 한다.
지구촌 230개 국가에 그런 특이한 사람이 열 명 씩 있다 치더라도 지구촌 인구 66.7억 명의 비율을 따지면 2300/667000000=0.000000345이니 백분율로 계산하는 의미가 없는 것이니 그렇게 따지면 안 되고 평범하게 오를 때 오른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날갯짓이야 낮은데서 한가롭게 노닐며 꽃이나 찾아다니는 나비나 높은데서 매서운 눈초리로 내려다보며 먹이를 찾는 독수리나 같다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웅지의 뜻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 하고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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