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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클라이언트

by Aphraates 2008. 9. 12.

클라이언트(Client).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익숙해진 말이다.

인터넷 강의에서 클라이언트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매우 중요하니 그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고객이라고 번역하면 낯서른 말이 아니다.

그런데 사회복지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쪽에서 도움을 받는 쪽을 두고 고객이라고 하면 물건을 사고파는 사이인 것 같아서 어색한데 클라이언트라는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면 부담감이 적고 훨씬 더 어감이 좋다.


사회복지사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항상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하였다.

도움을 주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인데 그 것이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로서 갖춰야할 기본자세라고도 하였다.

몸이 불편하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클라이언트인 장애우가 목이 말라서 보채는데 그를 돕겠다고 온 사회복지사가 자기가 더운 것만 생각하고 장애우의 옷을 벗기고 선풍기를 들이댄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공직자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직무를 정직, 공정, 성실하게 수행하고, 청렴하고 건전한 생활을 솔선수범하여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한다는 공직자 행동 강령과 비슷하다.


클라이언트......,

이 말은 형태는 다르지만 여러 곳에서 같은 의미로 널라 쓰이고 있다.

혼자 산다면 몰라도 둘 이상만 모이면 클라이언트 관계로 얽히고 �혀 있어 나를 필요로 하는 클라이언트, 클라이언트가 있기에 존재하는 나이고 보면 다 클라이언트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대통령께서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하신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께서 보시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기업 CEO들은 손님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고객 제일주의를 천명한다.

사장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 물건을 사는 소비자나 용역을 제공받는 이용자들은 그 회사의 존폐를 가름하는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공무원이나 작은 구멍가게 주인도 친절봉사를 주창한다.

주민등록 초본 하나 떼러 오는 주민이나 라면 한 봉지를 사러 오는 동네 사람이나 그들을 존재케 하는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때는 도움을 주는 클라이언트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도움을 받는 클라이언트이기도 하다.

주는 입장에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객봉사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담당하고 있는 업무 자체는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민원 업무는 아니지만 창구 담당이나 영업 파트가 아니더라도 조직 전체가 고객만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클라이언트를 향한 기본자세에 대해서 단련 받아왔다.

그런 소리를 듣고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워낙 딱딱한 일이다보니 나의 클라이언트들이 느끼기에는 만족스럽지는 못 할 거 같다는 반성이 된다.


나는 지금 도움을 제공하는 클라이언트로서 기분이 상당히 언짢다.

클라이언트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클라이언트를 우습게 여기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내가 작은 도움을 주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그런데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그 얘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이 되고 만다.

그 곳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명절 때를 비롯하여 일 년이면 몇 차례씩 후원을 했다.

후원이라고 해 봐야 부끄러울 정도로 미미하지만 조금이나마 정성을 보태고 함께 나누는 것이 기뻤다.

여유가 있어서 많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어 나를 기다리는 클라이언트도 있다는 자긍심의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곳으로부터 내부 문제가 발생하여 나한테까지 파급되었다.

그 곳과 비슷한 여러 곳에서 나의 클라이언트가 되겠다며 도움을 청하여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든 자립해 보겠다고 도움을 청하는 그 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나도 한계가 있는 것인데 자기네 한 군데만 더 도와달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것이다.

더는 도와줄 형편이 못 되는데 그런 것이 안타까웠다.

상대방에서 잘 못 해도 용서하고 이해하며 넘어가야지 뭐 그런 일로 마음 상하느냐고도 해 보고, 뭐 그렇게 대단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유세떠느냐며 자신을 나무래 보기도 하고, 작은 도움을 주고 기뻐하는 것도 자만일 수 있다는 반성도 해 봤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도와달라는 전화가 오는 데는 답답했다.

여태까지 조금씩이나마 나눔에 동참한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그런 모습들이 영 서운하여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부터 그 곳에서 전화가 몇 차례 와서 별다른 이야기를 안 하고 후원해줬다.

그런데 안 그러던 곳에서 도와달라는 것이 왜 그렇게 잦은 것인지 이상해서 다음에 다시 전화가 왔기에 확인을 해봤다.

그런데 내가 도움을 주던 그 곳이 아니었다.

내가 도움을 주던 곳은 해산된 지 오래 됐고, 나한테 도움을 청하던 사람은 아예 그 일에 종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일련의 과정을 추론해 보니 그 곳을 후원하던 후원자들의 명단을 유사한 여러 단체에서 공유하여 기왕 도와주던 것이나 아무데나 도와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어려운 처지에 조금이나마 동참해보겠다는 마음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 같았고, 배신과 사기를 당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 것은 관명 사칭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정보를 누출하여 악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럴 수는 없다는 자괴감이 앞섰다.

하지만 기왕에 도와준 것은 어디를 도와주던 도와준 것이니 불문에 붙이고 다음부터는 다시는 그런 도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자 그 분들의 전화가 잦아졌다.

경기불황으로 인하여 후원도 많이 줄었다는데 오죽하면 그럴까 하며 긍정적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들을 떠난 지 오래라 정중하게 사절하였고, 그런 서운함은 언제 풀릴지 나도 모르겠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소중하게 여겨야 할 클라이언트다.

그런데 그런 클라이언트를 배구공처럼 이리 저리 내 돌리다니 서운했다.

내가 그 곳을 도와준다는 것은 데보라 이외는 알지 못 하는 사실인데 누가 개인정보를 유출시켜 전화 한 통화면 척척 입금시켜주는 봉이 있다고 하다니 속 상했다.

빠듯한 살림에서 조금 도움을 주는 것인데 너도 나도 도와달라고 한다면 나는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라는 것인지 야속했다.

뭘 바라는 것도 아닌데 클라이언트를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인지 나도 어렵다며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단칼에 끊는 것이 슬펐다.

그런 것은 경쟁 안 해도 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모습이 아니라 우리 단체만 목표달성하면 된다고 하는 모습은 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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