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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전어라도 굽던 지 해야지

by Aphraates 2008. 9. 17.

전어(錢魚) 철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이상한 열대식물 Zamioculcas를 돈 나무(金錢樹)라 명명하고 그럴 듯한 화분에 심어 놓으니까 개업집이나 가정집으로 부리나케 팔려간다더니 돈 고기라고 풀이되는 전어도 그 격인지 가을 별미로 통하고 있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하였듯이 찬바람이 돌자 전어 맛이 오르기 시작했단다.

남해안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으로 올라오면서 시차를 두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방마다 전어 축제가 열려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작년 같은 해에는 자연산 전어가 많이 잡히는데다가 양식 전어도 폭발적으로 출하되어 값이 형편없었다는데 올 해는 어떤지 모르겠다.

헌데 전어는 값에 관계없이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전어를 좋아하지만 기름 값이 비싸서 나돌아 다니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바닷가로 나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기름 값 정도만 들이면 도로변 이동 주보나 포장마차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전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맛을 안 보고 지나기가 좀 서운한 사람들은 실비 횟집에 가면 저렴한 가격으로 구워 먹고 무쳐서 먹을 수 있다.


어제 가든파티에서는 가을이 가기 전에 전어 판을 한 번 벌이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비 내리는 구질구질한 날에 서해안 바닷가 전어 축제에 참가하여 비린내 진동하는 전어를 먹고 체하여 고생했던 좋지 않은 추억이 있어서 입에 안 댄지 몇 년 되었지만 조언은 할 수 있었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기 때문에 전어 판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새벽에 깨서 눈을 뜨니 전어 굽는 행사는 우리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그러다가 말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늘 그대로인 것을 보면 잘 안 되는가보다.

집은 커다란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더니 이제는 썰렁하여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기력이 다 되었는지 축 늘어져 눈만 멀뚱거리는 모습들이다.

그러니 전어라도 굽던지 해서 집 나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고, 영양실조 걸려서 비실거리는 사람들 영양보충이라도 시켜야지 만세 부른 상태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구석구석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폐가가 되어 집 주인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을 거 같이 불안하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집안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 집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다고 개탄스러워 하고, 동네 사람들은 저 집 큰일 났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그런 거 저런 거 따지며 걱정만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기사회생하는 명약이라도 투입하여 일단은 나자빠진 사람들을 일으켜 놓고 나서 쓰러져 가는 집을 손 봐야겠다.

그런 원론적인 것들이야 벌써부터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백약이 무효라는데 그런 명약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누구든지 나서서 명약을 얻으려고 문짝이 부서지도록 문을 두드리고, 백 번 찍어서 안 넘어 가면 백 한 번을 찍어야지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런 집안에 태어난 것도 다 팔자 소관이니 우리들 신세가 왜 이렇게 처량하게 됐느냐고 탄식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뭔가 하다 보면 명약은 어떨지 몰라도 생명을 부지케 하는 묘약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한 번 대들어 봐, 봐, 봐!

집나간 며느리 들어오게 한다고 전어라도 굽던지 해야 하는 식으로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에 빠졌다가는 절단 나게 생겼어.

그러니 며느리가 왜 집을 나갔는지, 집 나가 어디서 뭘 하는지, 어떻게 데리고 올는지, 돌아오면 다시는 못 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적극적이고 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강하게 나가야 되겠어.


유 언더스탠, 오케이 바리?

물론 이해하고 있고, 찬성하고 있지.

하지만 전어를 굽던 무치던 그 걸 누가 해야 하는 것인데?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은 보고,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듣고, 말할 입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봉사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며느리의 시집살이 석삼년을 시작한 것도 아닌 것을 왜들 그렇게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고, 입을 봉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모두가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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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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