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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이만 구천 오백 원 (₩29,500)

by Aphraates 2008. 9. 25.


동문 부부모임 장소 예약을 하려고 여러 곳을 물색해보았다.

모임 날짜는 다음 주말이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지만 다들 바쁘시므로 빨리 정해서 알려 줄 필요성이 있어서 서두른 것이었다.

특히 이번 달 모임은 9월 말로 현직에서 정년퇴임하시는 두 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자리이기도 해서 아늑하고 품위 있는 장소를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사전 준비가 더 필요하다.


내 나름대로 정한 모임 장소의 조건이 까다롭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별도의 조용한 방이어야 하고, 많은 양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풍의 단순한 메뉴의 전문 식당으로서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어야 하고, 서비스가 좋고 청결해야 하고, 비용은 다른 곳과 비교하여 비싸지 않아야 하고, 부부 동반으로 모이니 위치가 접근성과 교통성이 좋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식당으로 갖춰야할 좋은 조건은 다 갖다가 붙이는 것 같은데 그럴만한 장소가 있을까?

식당을 정하는 것도 자신과 모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동안의 경험과 조언을 토대로 여러 곳을 물색해 보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몇몇 분한테 어디 좋은데 없느냐고 자문을 구했더니 여기저기를 추천하다가 결론은 내리지 못 하고 그런 거는 내가 알아서 아도 치라는 말만 하였다.


결국은 값이 좀 비싸다는 것을 빼면 다른 조건은 그런대로 만족하는 곳인 우리 집 근처의 N 정(亭)으로 정하고 일단은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하였다.

여자가 일류 호텔 데스크 안내원처럼 세련되게 전화를 받았다.


본인) 갤러리 근처에 있는 N정이지요?

상대) 네, 그렇습니다. 손님, 뭘 도와드릴까요?


본인) 저는 향촌 주민이자 OOOO에 다니는 직원인데요 그 곳에 몇 번 갔었습니다. 모월모일모시에 동문 부부 열여덟 명 모임 예약을 하려고 그럽니다. 그 전에 몇 가지 좀 알아 볼 것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상대) 네, 그러세요? 먼저 저희 식당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손님의 말씀을 들으니 아주 다복하고 즐거운 모임이시겠는데 뭘 도와 드릴까요? 뭐든지 말씀 하세요.


본인) 그 인원이 들어갈 조용한 방은 있을 것이고, 전문으로 잘 하는 메뉴가 몇 가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고기를 안주로 술을 좀 마시고는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주 메뉴인 소고기는 완전한 한우일 텐데 일인분에 얼마나 합니까?

상대) 네. 와 보셔서 알겠지만 소고기는 물론 100% 한우로서 절대로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일인분에 이만 구천 오백 원이고, 양은 약간 적은 편이어서 한 분 당 1.2인 분을 잡으시면 될 겁니다. 식사비와 주류 비는 별도로서 아마 전체적으로 일인당 사 만원이면 넉넉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인) 제가 예상했던 대로입니다. 실비 집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고급 집도 아니고 그렇지요? 헌데 삼만 원이면 삼만 원이지 이만 구천 오백 원이라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요.

상대) 손님, 그러셨어요? 그런 생각이 드셨다면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손님들의 부담을 마음 적으로나마 덜어드리기 위해서 가겨표시를 그렇게 한 것이고, 저희 집은 값에 비하여 상당히 하이클래스의 집이라고 손님들이 그렇게 평가를 하십니다. 저희들이 최선을 다하여 편안하고 즐거운 모임이 되도록 해 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 예약 접수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만 구천 오백 원에 대한 의구심이 어느 정도는 풀렸다.

일인분이 얼마냐고 물었을 때 그 가격이라고 하는데는 그런 가벼운 수법으로 손님을 현혹시킬 식당이 아닌데 한 동안 안 가 본 사이에 식당 이미지가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언뜻 들었을 때 시장바닥 싸구려 물건 파는 것 같기도 하였고, 천 원짜리 햄버거를 구백구십 냥에 판다는 술법 같기도 하여 기분이 좀 언짢았다.

요즈음 어지간한 식당에는 손님들이 없어서 걱정들이라는데 그 식당도 그런 차원에서 실질적으로는 깎아주는 것이 아니면서도 깎아주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실정에서 같이 고통분담을 하려고 묘수를 낸 것이라는 안내원의 말에 언짢았던 기분이 좀 풀렸다.


나도는 상품 가격표시와 판촉 하는 세일 문구도 가지가지다.

손님들한테 부담감이 없고 친밀감이 가게 하면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하는 것 같은 마케팅 전략은 좋지만 공장이 망했다는 프랭카트를 붙여 놓고 만 원짜리를 단돈 천원에 폭탄 세일한다고 하는 것 같은 방법은 그렇게 관심을 갖게 하는 기법은 아닌 거 같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혹하여 하나라도 더 사가려고 아우성치지는 않고 오히려 너무도 터무니없는 선전 문구와 세일이어서 그를 믿지 않고 상투적인 상술이라며 눈여겨보지도 않을 것 같다.

빗나가 홍보 전략은 불신만 초래하기 쉽다.

한 해 동안 성원해 주신 고객님들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연말 바겐세일을 한다고 그 상품 애용자도 아닌 사람들한테까지 무차별적으로 안내장을 보낸다면 좋게 여기기는커녕 어지간히도 장사가 안 되는 싸구려 라고 무시당하가 쉽다.

단골 고객들에게 진짜 감사 표시를 하고 싶으면 그런 돈으로 간단한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는 것이 효과적이지 알리기만 한다면 된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펼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사 파리를 날릴 수도 있다.


오늘의 식당 예약은 삼만 원 짜리를 이만 구천 오백 원 이라고 해서 한 것은 아니고, 그런 표현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기분학상으로 가격을 따지는 사람들한테는 비록 할인 같지 않은 오백 원을 할인하는 것일지라도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라 할 수 있겠는데 요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손님들이 싸다는 인식으로 그 집을 찾았을 때 얼마나 만족 하느냐 하는 것이다.

돈 오백 원이 별거 아니지만 사람들 하는 것을 보니 정성이 갸륵하고 뭔가는 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 오백 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으니 그 식당은 되겠다는 소리를 들으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돈 오백 원이 뭐라고 사람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꽤재재하고 음침한 것이 싹수가 노래 오천 원 이상의 마이너스 효과가 있을 것 같으니 그 식당은 이미 글렀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사서 고생하지 말고 일찌감치 문을 닫는 것이 좋은 실패작이다.

아무리 자기들이 잘 한다고 외쳐도 그 판단은 손님들이 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님이 많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큼 잘 한다는 뜻이고, 손님이 없으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만큼 못 한다는 뜻이니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빨리 그를 캐치하여 발전시키거나 개선시켜야 한다.

엉뚱한 판단을 하고 엉뚱한 짓을 하며 고집을 부린다면 오래 버티지 못 하고 문을 닫아야 할 텐데 그게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가 아닌가 한다.


이만 구천 오백 원이 그 배인 육만 원 짜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 절반인 일만 오천 원짜리가 될 것인지는 그 날에 직접 가서 맛을 봐야 알 테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수많은 손님 중의 한 사람인 내가 밥 한 끼 먹으려고 하면서도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그 식당 사장님과 종업원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라고 추측해보는데 그 추측이 빗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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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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