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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갈기산 하당지우

by Aphraates 2008. 9. 27.

많은 바위가 산기슭을 감아 도는 금강과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충북 영동의 갈기산(585m)을 다녀왔다.

주말을 이용한 회사 산악회 행사의 일환으로서 2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데보라는 산악회원은 아니었지만 산만 쳐다보면 두 다리에 힘이 쪽 빠지는 필자의 가이드겸 보호자로서 참가하였다.

아직 개발되지 않아 등산로는 물론이고 안내판 하나 제대로 없고 먼저 산에 올랐던 산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안내 리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갈기산”이라는 오석 표지석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충남 금산, 충북 영동과 옥천의 험준한 산악들을 가까운 곳의 검은 산부터 시작하여 멀리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물가물한 산까지 바라보느라니 개선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거기에다가 발 아래로 휘감아 도는 푸르른 금강과 곡식들이 익어가는 산사이의 손바닥만한 들판들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선천적으로 산에 약한 취약점을 만회하기 위하여 길가에 단초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일행보다는 2시간 먼저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악회에서 배부된 안내 지도를 보고 올라갔지만 가면서 지도와 위치를 확인 해보니 영 맞지를 않는 것 같아서 능선이 여러 개이지만 가다보면 정상이 나올 것이라며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가파른 바위산 길을 올랐다.

어디가 갈기산 정상인지 알지도 못 하면서 등산객 한명도 안 보이는 미개척 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정상 부근에서 심마니 할아버지를 만나 갈기산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지쳐서 신나고 재미나게 말씀하시는 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저기가 정상인지만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맞는다고 하시는데 는 힘이 절로 났다.

등산길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고, 그 밑으로 상수리와 쥐 밤이 지천이어서 처음에는 몇 개씩 줍다가 나중에는 그도 귀찮아 안 주었다.


정상에 올라서 실제 지형과 지도를 비교해보니 우리는 산악회 예정 코스와는 정반대에서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엉뚱한 곳으로 올라가는 실수하고서도 올라오면서 전혀 맞지 않는 지도를 펼쳐 놓고 흔적도 없는 곳을 두고 상상으로 여기쯤이 헬기장, 여기가 덜게기, 저기가 말갈기 능선 하면서 소설을 썼으니 참 우스웠다.

정상에서 확 트인 사방을 둘러보며 한 참 기다리고 있으니 선발대를 시작으로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나는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하고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며 올라와 헬쓱한 얼굴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뿌듯했는데 일행들은 산이 너무 싱겁다고 하여 좀 멀쑥했다.

갈기산 정상은 협소한 가파른 암벽 꼭대기여서 여러 사람이 거동하기에는 위험했다.

그래서 조금 내려와 그늘 아래에서 정상주(頂上酒)로 힘찬 도약을 기원하는 브라보를 하였고, 산악회에서 준비하고 데보라가 조금 싸 갖고 간 간이 음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였다.


하산 코스에서도 우리 부부는 일행과 반대로 잡았다.

차가 그 편에 주차 돼 있고, 예정된 긴 코스보다는 우리가 내려 갈 농원 쪽 코스가 짧고 수월할 거 같아서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오산이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볼 때는 예정된 하산 코스가 완만하고 길게 보였고, 우리가 내려갈 코스는 바로 발 아래로 가까운 것 같았는데 막상 내려 가 보니 짧은 만큼 험한 암벽 코스였다.

바로 눈앞에 주차장이 보이는 거 같은데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그나마도 로프가 달려 그를 붙잡지 않으면 내려오기 힘든 암벽이 대부분이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걷기가 싫더니 급기야는 그렇게 험한 길도 아닌 곳에서 데구루루 하고 뒹굴고 말았다.

중간에 있는 나무에 걸려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더 낮은 곳으로 나뒹굴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데보라가 나무를 잡고 나자빠진 곳으로 다가왔고, 어기 다친 거 같지는 않지만 팔과 다리와 어께가 뻑적지근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창피하고 큰일 날 뻔 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한 동안 할 말을 잊은 채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순간의 하당지우였지만 나는 물론이고 데보라도 얼마나 놀랬는지 얼굴이 하야 재 갖고 배낭에서 찬 물을 꺼내 몇 모금 마시라고 주었다.

앉아서 까지 무릎과 저린 몸을 충그리느라니 움직이기가 싫어 헬기라도 대절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어서 천신만고 끝에 하산을 마쳤다.


금강 변에 있는 식당에 가서 일행들과 합류하여 어죽과, 도리 뱅뱅, 민물 새우튀김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피로가 다 풀어졌다.

험산이지만 나지막한 갈기산에 올라가서 하당지우(下堂之憂)하며 어려워했던 것이 좀 겸연쩍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어려운 산행을 한 것이어서 그런대로 가뿐하였다.

대전으로 돌아오며 차 안에서 내가 “다시는 산에…….”  하고 얼버무렸더니 데보라가 “다시는 산에 안 가겠다고?” 하며 웃길래 “그게 아니고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오르겠다고” 라고 하였더니 좀 어렵더라도 가능하며 매주 한 번씩이라도 산에 가자고 하여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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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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