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뭘 그렇게 푸짐하게 먹을 만한 체구도 아닌데 배고픈 것을 유난히 못 참는다.
주로 식사 때가 되면 그렇다.
배가 고프다고 생각이 되면 뭐든지 얼른 먹어야지 조금만 지체하면 속이 이상하고 하늘이 노래져서 만사가 귀찮아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은 타고난 체질이라 하고, 혹자는 육이오 세대로 전쟁 통에 젖배를 곯아서 그렇다 하고, 누구는 참을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애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속을 채워야지 안 그러면 뱃속에서의 원망이 대단하여 시간이 지나서 뭘 먹으면 맛도 없고 탈이 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식성이 좋은 것인가, 아닌가?
그 것도 잘 모르겠다.
배고플 때는 뭐든지 잘 먹어 식성이 좋지만 배고프지 않은 평상시에는 촌스러운 내 입과 취향에 안 맞으면 아무리 진수성찬의 수라상이라도 손도 안 댈 정도로 식성이 까다로울 정도로 이중적이다.
그런데도 배고프고 안 고프고를 떠나서 때로는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하고 기다려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아우님이 아이가 휴가를 나왔는데 삐쩍 말라 있다며 바닷가에 데리고 가서 생선회라도 먹여야지 안 되겠다며 은근히 걱정을 하였다.
초년병 시절을 지나 이제는 볼테기에 살이 올라 올 때도 됐는데 야위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테니 무슨 일이 있는지 얘기해보고 별 거 아니면 모른 체 하라고 일렀다.
군대생활 할 정도의 나이라면 제 앞가림은 제가 해야 하고, 군대 룰에 따라 다 잘 되게 되어 있는데 어른이 나서고 룰을 비켜나려고 하면 반발감이 일고, 일이 더 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요새는 군대에서도 다이어트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것은 아닐 것이다.
회사를 오가면서 고급 장교들과 장성들이 불어난 체력을 줄이기 위하여 계룡대 길 조깅하는 것은 봤어도 병사들이 다이어트 한다는 소리는 들어보질 못 했다.
군대생활 자체가 정량 급식과 정량 훈련의 다이어트 스케줄인 것을 너는 왜 배가 나왔느냐, 너는 왜 그렇게 깡말랐느냐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신식 군대에서는 사제(私製) 음식을 손쉽게 먹을 수도 있다니 그런 정량의 원칙이 좀 변형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일부러 살이 안 찌게 하기 위하여 별도의 운동 같은 것은 안 시켜도 될 거 같다.
하지만 구식 군대에서는 안 그랬다.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한테 먹이는 것은 짬밥이라고 비하하는 정량이 전부였고 그나마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져 항상 배고팠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들어가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배가 불쑥 나오고 얼굴에 기름기가 반질반질하던 배불떼기는 배가 쑥 들어가 헬쓱하고, 배가 쏙 들어가고 얼굴에 버짐이 피던 홀쭉이는 장단지에 살이 조금씩 붙으면서 얼굴이 부옇게 되는 평형화를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태어난 지 얼만 안 되어 뛰어 다니는 돼지새끼들을 보고 이 놈인지 저놈인지 잘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군인들도 모여 놓으면 다 그만그만하여 이 사람이 김 일병인지 저 사람이 김 일병인지 잘 구분이 안 됐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에는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하고 기다릴 것이 없었다.
메뉴판에 주간 식단을 적어놨지만 메뉴는 뭐라도 상관없었고 뭐든지 배부르게 많이만 주면 좋았으니까 이면수어와 도루묵 국이든 돼지고기와 닭고기 국이고 가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먹는 것이 절절 넘치는 요즈음에는 “무엇이든 많이 만 다오” 할 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가끔 맛있는 것을 많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육을 받을 때가 그렇다.
이제는 연륜이 쌓여서 먹는 즐거움보다는 교육 받는 즐거움에 더 치중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식사 시간이 가까우면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하고 기다려진다.
그런가 하면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즐거움을 모르고 짜증이 날 때도 있는데 가봐야 그게 그 거로 일률적인 뷔페식 식사나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 날 구내식당의 점심 식사와 같이 기대할 것이 별로 없을 때가 그렇다.
또한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다가도 나중에는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하고 기다려지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은 지구촌 어디를 가나 먹는 것 때문에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아 현지에서 양주보다 비싸게 팔리는 소주는 챙겨도 고추장을 싸 간다거나 라면을 가져간다거나 하며 식량을 챙기지는 않는다.
그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이 글로벌화 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한식 식당이 자리 잡고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어 식당이 글로벌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안 그랬다.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이 해외에 나갈 때에는 먹는 것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 보면 꼬챙이처럼 말라서 들어왔는데 비행기를 타면 느끼는 고소 불안증만큼이나 괴로운 것이었다.
내가 처음 중국에 갔을 때였다.
그 때는 한국인의 중국 입국이 자유롭지 못하였기 때문에 곳곳에 동포나 후세들이 살아도 한식을 먹어보기는 힘들었다.
기름에 튀기고 볶는 느끼한 중국 음식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가면서 고추장을 비롯한 마른 반찬을 여러 가지 갖고 갔다.
중국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도저히 못 견딜 거 같으면 체면불구하고 식탁에 내 놓고서 먹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갖고 간 것은 하나도 안 먹고 고스란히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
중국 음식이 입에 짝 달라붙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시간이 가고 먹어 볼수록 새롭고 감칠맛이 있어서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하고 기다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대로 좀 더 오래 있었다면 다른 더 좋은 것들도 맛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었다.
배가 고프던 안 고프던, 식사 습성이 까다롭던 무디던, 살기 위하여 먹는 사람이던 맛을 알기 위하여 먹는 사람이던, 맛깔스러운 미듐 소고기에 감미로운 수프가 겻들인 비후스텍이던 양념이라고는 멸치 몇 마리인 양푼 칼국수에 단무지가 나오는 것은 먹는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즐겁다.
오늘은 기다림으로 설레이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당신 말씀을 듣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며 앞으로의 시간에 희망을 가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언젠가부터 그 기다림의 설레임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변색되어 마음 아프다.
당신 말씀이야 다른 루트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접하고 있어서 숙연한 마음으로 음미하면 되는 것이니 그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일로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하는 웃음과 걱정이 일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런 국면을 접한 사람들은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무감각하여 “오늘 무엇이 나올까?” 하고 기다림보다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되묻는 형국이다.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되는 거룩하고 엄숙한 곳에서 사람들이 해학적으로 “오늘은 무엇이 나올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고 엉뚱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재미를 들려야 하니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번에는 혹시 달라졌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가보지만 여태까지는 무참히도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오늘은 혹시......, 하며 슬며시 가보는 것은 사람이 모자란 것인지 착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꼴 저런 꼴 안 보면 이 좋은 날에 인상 찌푸리고 마음 상할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그리고 못 볼 것도 봐야 하는 지라 기대해서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기대하면서 가보는 것이다.
근본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을 기대하며 가는 것이 좀 어색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그 것도 하나의 길일 수도 있으니 세상 다 무너진 것처럼 마음 쓸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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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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