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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아직 애들이네

by Aphraates 2008. 9. 29.

지천명을 훨씬 넘긴 내 나이가 어느 수준인가는 가는 곳마다 다르다.


가정적으로…….

졸수를 향해 가시고 기이지수까지 넘기실 것 같은 우리 어머니가 보실 때는 아직도 말썽꾸러기 일 것이고, 유치원에 들어가려는 손녀가 볼 때는 수염은 안 길렀지만 지엄한 할아버지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연세도 많으시고 훌륭한 사장님이 보실 때는 아직도 젊어 무슨 일을 맘대로 맡기기는 곤란하다고 생각될 것이고, 금년도 사번의 사원 증을 패용하고 보직 부임하여 신고하는 신입 사원이 볼 때는 무엇이든 잘 하는 근엄한 상사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종교적으로…….

성직 수도자가 볼 때는 참된 신앙인이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판단될 것이고, 대자 대녀(代子 代女)들이 볼 때는 믿고 따를 대부(代父)님이라고 판단 될 것이다.

그렇게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위상에 바로바로 적응하지 못하여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그게 나의 삶이고 나의 한계인 것을 넘쳐서 주체 못할 것도 없고 모자라서 허덕일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회사에서는 우리들 또래 위의 사람들이 별로 없다.

흘러간 백마강에 낮아진 낙화암의 구시대 사람들이 돼 있다.

며칠 전에도 함께 하시던 가까운 동료 분들 다섯 분의 정년퇴임식이 있었지만 젊은 시절부터 모시고 동고동락하던 선배님들은 거의 다 아웃되시어 이제는 애경사 집에나 가야 만나는 정도이다.

그리고 거느리고 있던 후배들은 부하나 또는 상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그 수도 얼마 안 될 뿐 아니라 우리들하고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동세대들이나 마찬가지여서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섬겨야할 신세대 신참들 때문에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반 사회에서는 아직은 그 정도로 취급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이마빡이 반들반들하고 흰머리가 없는 것을 보면 아직 한 참 때라는 소리도 듣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로부터는 정년이 머지않았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중이라고 하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면 어쩌느냐며 거짓말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물며는 연구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시다가 정년퇴임하신지 한 참 된 노회장(老會長)님 같으신 분께서는 내 나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시고는 “아직 애들이네” 라고 농담하시며 웃으셨다고 한다.


우리 나이에 어떻게 보여야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나이 안 들어 보여도 그렇고, 너무 나이 들어 보여도 그런 거 같다.

동문 자혼에 가서 만난 동기들을 보면 대부분이 얼굴도 노숙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하여 가까이 다가가 귀에다 대고 “너는 왜 건방지게 머리만 세고 그러냐?” 라고 하면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이 나이에 이 정도는 돼야지 너는 그렇게 애들처럼 동안(童顔)이고 검은 머리여서야 어디 체통이 서겠냐?” 라고 하여 파안대소하기도 한다.

실상은 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에 주름이 적지 않고, 흰 머리가 적지 않지만 대충 보기에는 내 나이만큼 들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나이 들어 보인다거나 나이 안 들어 보인다거나 하는 소리를 들어 기분이 좋은 지 나쁜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이에 맞게 적절히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이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이든 사람들이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면 술 사 준다고 해도 도망가고 싶고, 나이 안 든 사람들이 속으로는 어떤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자기들 하고 함께 하자고 하면 먼저 나가서 술값 계산하고 싶은 심정은 다 같을 것이지만 주책없고 눈치 없이 여기저기 끼려고 하면 그도 덜 멋진 일일 것이다.


영감님은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공사(公私)의 직에서 정년퇴임하신 선배님들의 사모님께 농담 삼아 건네는 인사말이다.

정년퇴임하셨지만 아직은 영감님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지만 특별히 하시는 일 없이 등산이나 농사일로 소일하시는 분들을 위로하는 차원인데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대개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하나는 “글쎄 모르겠어요. 역마살 낀 사람처럼 쏴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일이나 도와주면서 잠자코 있다가 좀 쑤시면 어부인하여 나가자고 해도 도무지 통하질 않아요. 영양가 있이 하는 일도 없으면서 무슨 사무가 그렇게 바쁜지 집에 붙어 있을 날이 없다니까요” 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고 그 인간 말씀도 마세요. 아주 죽을 맛이에요. 하루라도 푸닥거리 한 바탕 안 하면 밥맛이 안 나는 정도예요. 돈 버는 일을 하면 좋지만 돈은 못 벌더라도 집에 있으면서 귀찮게 하지만 말고 나가서 친구도 좀 만나고 술도 좀 마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죽치 고 앉아서 밖으로는 한발자욱도 안 나가요. 제발 좀 오셔서 데리고 다녀주세요” 라는 것이다.

바람둥이든 방안통수이든 각자의 취향이니 무엇이 더 낫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반된 모습이라고 해서 상대방을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평생을 지켜온 생활 습관을 일을 그만뒀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바꿔야 하는데서 오는 갈등과 허망함을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인생은 행복하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그 나이가 되면 어떤 부류에 속할지 모르겠다.

어디에 속하던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안 좋은 그런저런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텐데 무엇이 되어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 작업에도 못 들어갔으니 여타의 기 경험자들보다도 더 험한 꼴을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직도 애들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긍정적인 생활태도이니 나름대로의 헤쳐 나가는 길도 있을 거 같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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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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