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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나 같은 사람마저 앞서 가면 안 되지

by Aphraates 2008. 9. 30.

정년퇴직을 얼마 안 앞둔 노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기초 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주야장청 그 자리를 지키시고 그 과목 하나만 강의하시던 교수님이시었다.

그 분야에서도 무수한 첨단 기술이 개발되었고 앞으로도 신기술이 무궁무진하게 개발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 그 노교수님의 어느 제자는 그 분야의 응용 기술을 개발하여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석학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신기술이 나와 학문과 기술 동향이 어떻든 변하든, 수강하는 학생들이 적어서 존폐위기에까지 몰릴 정도로 인기가 없던, 남들이 그 분야를 응용하여 많은 돈을 벌던 그 분야만 지키고 계셨다.

어떻게 보면 고고한 성품의 학자이시고, 어떻게 보면 앞뒤가 꼭 막힌 답답한 훈장이신데 다른 것은 몰라도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존경스럽다.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조차 이제는 자네들이 나보다 나으니 다음에 더 좋은 것을 사 주고 오늘은 내가 내겠다고 하시어 보이지 않는 밀고 땅김을 하였다.

그런 것이야 어찌 되어도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 것 보다는 전과 다름없이 대학, 가정, 세상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주관이 뚜렷하고, 쉽고, 현실적으로, 재미있게 말씀하시는 것이 감명 깊었다.


그 말씀 중에서도 자리를 지킬 사람은 굳굳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사신다고 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평소 지론이 그러셨다.

세상이 아무리 발달하고 사람이 아무리 많아진다 해도 앞서 가고, 중간에 가고, 뒤따라가는(선중후先中後) 것은 있기 마련일 뿐 아니라 그래야 만이 균형을 잡으며 발전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필요하고 득이 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급격하게 변하고 유리한 쪽으로만 서면 균형이 깨어지고, 나중에 남는 것을 처치하거나 모자란 것을 보충하려면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니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전체적으로 보면 큰 낭비라는 것이었다.

당신도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기초 공학에 전념하다보니 한 것도 없이 정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자리를 지킨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현대에 필요 없는 것을 가르치네, 연구하기 싫으니까 아는 것 그 하나만 고집하네, 융통성이 없네 하는 소리를 할 때는 서운하기도 하셨다면서 법조계통에 고위직에 있는 당신 친구 분은 더 하더라며 이야기 해 주셨다.


그 친구 분은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 당신이 봐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보수적이란다.

보기 민망스러워서 언젠가는 지금 그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느냐고 변화 좀 하라고 하였단다.

그랬더니 그 친구 분 하시는 말씀이 자기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중간에 서서 앞도 보고 뒤도 봐야지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처럼 너무 앞서나가거나 너무 뒤처지면 혼란이 일어나 역효과라고 하시더란 것이다.

빠르게 변한다고 빠른 시류에 편승하면 후유증이 따르니 때로는 느긋해야 하고, 정체되었다고 느린 시류에 영합하면 부작용이 따르니 때로는 빨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지내시던 동료 선배님들이 합동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추세에 따라 간소화되어 예전처럼 성대한 분위기는 아니고 조촐하였지만 그 의미만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선배님들께서는 기나긴 모진 세월들을 겪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직장을 천직으로 알고 정성을 다 하였기에 오늘의 영광이 있는 것이지 나비가 꿀을 따라 다니듯이 좋은 것만 쫓아다녔으면 오늘 같이 만감이 교차하는 여운은 안 남았을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들 하셨다.

다 먹고 살기 위한 것들이었지만 사회자가 퇴직하시는 선배님들의 약력 소개를 할 때마다 참석한 후배들이 “저 분도 4자(字)가 들어가네” 하며 수군거리는 감탄사가 나왔는데 40 년이 넘게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시류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며 “나 같은 사람마저 앞서 가면 안 되지”하는 사명감이 없이 돈 더 주고 좋은 자리라는 곳을 철새처럼 찾아다녔으면 오늘 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 때는 선배님들이 자리하고 계시던 곳은 조건과 처우가 다른 곳만 못 하고 활력이 없다며 외면을 받기도 했다.

어디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치욕스러운 소리를 들어가면서 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보니 이제는 신이 내린......, 신도 부러워하는......, 신도 놀래는......, 소리를 듣는 부러움을 사며 정년퇴직을 하시는 것이다.


그 곳은 획기적으로 달라지거나 좋아 진 것이 없다.

외면을 받을 때나 부러움을 살 때나 페이스가 변함없이 유지되어 오고 있는데 “신이......,” 하는 것은 뭔가 곡해가 있는 것 같다.

좋은 것이 영원히 좋을 수만은 없고, 나쁜 것이 영원히 나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지나친 것이 아닐까?

요즈음 세상에 정년퇴직하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놀라지만 서양식이 아닌 동양식의 사고방식과 직업관인 우리 현실에서 안정된 평생고용 개념을 사그리 지워버리고 임시직 인턴제만 있다면 그 혼란스러움이 어떨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닐까?

성격과 상황에 따라 조기퇴직을 하는 곳이 있으면 정년퇴직을 하는 곳도 있어야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지 한 쪽으로 몰아 붙여 모든 국민은 사오정이면 그만 두고 애를 보라고 한다던가, 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이 불문하고 두터운 돋보기를 써도 글씨가 안 보여 더듬적거리는 것을 지나 벽에 X 칠할 때까지 근무해라 한다던가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봤을까?


그런 일들로 말이 무성한 것은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앞 서 나가지 못한 상대적인 허탈감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부진함은 뒤로 한 채 남들한테는 그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면 인기가 없어 외면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운한 마음일 텐데 지난 서러움과 밀려오는 서러움은 무엇으로 보상해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소리들에 일희일비하기에 앞서 그런 영향들로 흔들릴 수 없는 것은 노교수님의 생각과 말씀처럼 사람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누군가는 그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정년퇴직하시는 선배님들의 등을 웃음으로 떠밀었다.

미련두지 말고 빨리들 가시라는 의미였다.

또한 선배님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숱한 고난을 겪어가면서 일궈 놓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부정할 수 없는 것이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는 노교수님의 말씀취지대로 나가셔도 그 위치에 맞는 해야 할 뭔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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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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