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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인내(忍耐)

by Aphraates 2008. 10. 3.

먹어도 먹어도 배고파 껄떡거리던 한창 클 때와 왕성한 심신활동을 할 때는 꿈꾸는 것조차도 맨 먹는 꿈이었다.


학창시절의 호떡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한 달 버스비를 톡 털어 한 자리에서 호떡을 다 사 먹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한 번 타는 버스비나 호떡 하나 값이 같았으니 비록 친구와 둘이 먹기는 하였지만 몇 개의 호떡을 먹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체구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호떡을 먹을 수 있었는지 이거는 사람의 위가 아니라 소의 위였다.

그런데도 그 때는 그렇게 먹고도 카바이드 호롱불이 켜져 있는 호떡집을 뒤로 하고 나올 때는 좀 모자라는 듯 서운하여 몇 개만 더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날 밤에는 영락없이 호떡 꿈을 꿨다.

버터를 발라 누런 설탕을 뿌린 호떡과 따끈한 오뎅 국물을 실컷 먹고 배  불러 뒤뚱거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꿈을 꾸다가 깨어 허탈했다.

그러면 찬 물을 한 사발을 마시며 마음의 허기를 달래곤 했다.


군대시절에는 돼지고기 한 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것도 지금처럼 불판에 구워 먹는 삼겹살이 아니라 국에 넣은 것이나 삶아서 뭉텅뭉텅 썬 옛날식의 돼지고기였다.

돼지가 장화신고 지나갔다고 말할 정도로 멀건 한 국에 둥둥 떠다니던 돼지비계라도 있으면 그 거는 완전히 왕건이었다.

먹기조차 아깝지만 짧은 식사시간에 망설였다가는 누가 건져갈지도 몰라서 날름 먹고 나면 왜 그렇게 허전하고 적던지 그 감미로운 돼지고기 맛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그런 날 밤에는 여지없이 돼지고기 꿈을 꿨다.

갓 삶아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를 소금을 듬뿍 찍어 입천장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먹고 있는데 불침번이 웬 잠꼬대냐며 흔들어 깨워 깨 보면 꿈이었다.

꿈속에서나마 실컷 먹도록 내버려두지 왜 잠을 깨웠는지 야속하였지만 졸병이 고참한테 뭐라 할 수도 없어서 돼지고기를 먹는 그 꿈이 생시였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에 한 동안 침상에 그대로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잘 먹어야 할 때 잘 먹지 못하면서 살아 온 그런 과거의 아픔이 있다.

물론 나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호떡과 돼지고기(이제는 소고기가 더 좋아)를 좋아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먹는 편이어서 현대풍의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로부터 식성도 참 이상하고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또, 돈이 없어서 맘대로 먹지 못해도 참아야 만 했고, 참는데 는 이골이 나 있었다.

돈이 없고, 내 것이 아니면 먹고 싶어도 참아냈지 남의 것과 안 되는 것을 함부로 넘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옆에서 누가 호떡과 돼지고기를 먹거나 호떡집과 국밥집 앞을 지날 때면 그 냄새가 어찌나 구수한지 참기 어려웠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무조건 들어가서 다만 몇 볼테기라도 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냥 지나치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질리도록 한 번 먹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으로 냄새의 유혹을 뿌리쳤다.

하지만 돈을 벌어 호떡과 돼지고기를 맘대로 먹을 수 있을 때에는 다른 사정이 생기고 입맛도 달라져서 그렇게 해보질 못 했다.

그러니 세상없는 짓을 한다 해도 그 때 그 시절의 호떡과 돼지고기 맛은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먹고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결이 될 정도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호떡과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서 사고를 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물질적으로 풍족한데도 참을성은 더 약해졌다.

돈이 없으면 싸구려 호떡이나 돼지고기를 먹으면 될 텐데 돈이 없으면서도 비싼 케이크나 한우 등심을 먹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그게 잘 안 되면 남의 것을 훔친다거나 돈을 내 놓으라고 칼을 들이대는데 그 조마조마하여 진땀을 흘리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맡겨 놓은 것을 찾아간다는 식으로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자연스럽게 그런다.

그만큼 참을성이 없고, 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하여 이성을 잃고 나중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렇게 참을성 없는 것은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무소유 개념의 인생을 달관한 인도의 풋내기 도사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은 남의 가방에 있는 빵을 꺼내서 자기 것처럼 먹으면서도 빵 임자가 남의 것을 그러면 안 된다고 뭐라고 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것도 되고 네 것도 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러난다.

빵을 먹기위하여 범죄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 게 인도 철학이고 인도 사람들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흉보기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아닌 것을 알고는 더 진전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은 고차원의 철학적인 의미가 함축돼 있는 것 같기도 하여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었다.


그런 걸 보면 구시대는 아둔했고, 신시대는 현명하다고 해야 하나?

각자가 생각하고 판단할 문제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이 소리는 전설의 고향에서나 들음직한 소리다.

청상과부로 온갖 괄시를 당하고 고생을 하면서 외아들을 키워 장가를 보냈더니 아들 또한 얼마 살지 못하여 새로운 청상과부를 만들었다.

그 가엾은 며느리를 두고 한 많은 시어머니가 밤이면 밤마다 읊조리는 소리인데 모진 세월일지라도 참아내면서 굳건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인내를 강조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야 그냥 지나치는 말로 참 안 됐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의 애끓는 심정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을 들이 댈 것도 없이 참을 것은 참아야지 내가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 하나 없어지면 그만이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여러 사람들한테 폐를 끼치는 것이다.


무명 연예인으로 입문하여 모진 고생을 하다가 유명 연예인의 단계를 뛰어 넘어 국민 탤런트라고까지 호칭 받았고, 근검절약과 강인한 생활력으로 저축 왕까지 포상 받아 또순이라는 칭호를 받던 탤런트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는 정말 이래서는 들 안 된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한테 이러쿵저러쿵 하는 무례함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이 거는 아니라는 좌절감이 앞섰다.

장래가 유망한 젊은 연예인들의 잇단 불행한 사건을 보면서 인내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누구한테든 그런 일들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께서 숭고한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뜻을 펼치시고자 조선을 개국한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 국경일인데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게 살고, 그 뜻을 펼쳤던 못 펼쳤던 당신 품에 안기신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시라고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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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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