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산포에 다녀오다가 마곡사 길로 접어들었다.
좀 돌아서 먼 그 길을 택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곳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아련한 그리움을 젖게 하는 곳이다.
충청도 북부지방이나 고향을 다녀오면서 수시로 지나치던 곳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 동안 뜸하여 그 곳에 무슨 변화라도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강원도 심심산골 산세같이 험준하지는 않지만 충청도 다른 곳 보다는 그래도 험한 편인 그 길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차가 어쩌다 한 대씩 오갈 정도로 인적이 드문 길인데 본격적인 농사철도 아니고 가을 행락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나마 차가 거의 안 보여 더 한가하게 느껴졌다.
푸르른 빛을 접고 서서히 단풍들기를 기다리는 계곡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차창 문을 열고 콧노래를 부르며 어린 아이가 걸어서도 �아 올만한 속도로 천천히 내려왔다.
고개마루터를 내려와 인가가 있는 곳으로 접어들으니 야트막한 산 중턱으로 임도(林道)가 나 있는 모퉁이에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아는 사람이 전혀 있을 리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차를 길모퉁이에 세우고 그들 곁으로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저는 고향에 갔다가 대전 집으로 가는 길인데 석양의 세 분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이렇게 내렸다면서 뭘 그렇게 맛있게 드시고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느냐고 하였더니 웃기만 하였다.
가까이서 보니 두 분은 60대 초반으로 보이고, 한 분은 4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남자들이 입는 허줄한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쉬는 것 같았는데 머리는 흐트러지고, 몸에 땀이 배었는지 땀 냄새가 물씬 했는데 뭔가 평화롭게 느껴지면서도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나이 드신 분이 입을 열었다.
요 아래 동네에 사는데 요새 밤 줍는 철이라서 이 댁 밤을 줍는 일을 끝내고 돌아가다가 앉아서 잠시 쉬어 밤 몇 톨을 까먹는 중이라며 옆에 있는 젊은 여자를 가리켰다.
밤 줍는 일에 대해서는 고향에서 대량으로 밤농사 짓는 친구들을 통하여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주말 농장이나 임자가 없는 산에 가서 재미로 밤 몇 됫박 줍는 것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농작물 수확하는 차원에서 9월 한 달 내내 밤을 줍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일꾼 구하기도 힘들고, 어렵게 밤농사 져 봐야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품값 남기기도 어려운 형편이라서 다시는 안 짓는다고 하면서도 그나마 안 하면 돈을 만져볼 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해마다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얘기를 떠올리며 “하루 종일 밤 줍느라고 고생하셨겠어요? 산비탈을 오르내리면서 밤 몇 포대를 줍고 나면 손발은 물론이고 온 몸이 안 아픈데 가 없을 텐데 피곤하시겠어요. 그나저나 밤 값이나 좋아야 할 텐데 올해는 어떤가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꾸도 안 하고 저편만 바라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올해는 밤이 알도 작고, 개수도 적은데 밤 값마저도 형편이 없다네요. 농약 값과 품값도 안 나올 거 같은데 어려운 거 생각하여 밤농사는 안 한다고 하면서도 그나마 안 하면 애들 학비며 공과금이며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이러고 있네요”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옷깃을 여미며 호주머니에서 밤 몇 개를 꺼내 건네주며 밤은 얼마동안 숙성되어야 제 맛이 나지만 그래도 드실 만 하니 드셔보라고 하였다.
잘 먹겠다고 밤을 받아 들었지만 거기에서 까먹기는 그랬다.
그렇다고 멍하니 서 있기도 그래서 얼른 차에 가 뒷좌석에 있는 빵과 음료수를 들고 나와 출출하시면 이 것 좀 드시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게 웬 것이냐며 맛있게 드시고 나서는 몇 개 남은 것을 봉지에 담으면서 이걸 우리가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힘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젊은 여자가 “사장님의 한가한 모습이 참 부러운데 도시에서 여유롭게 사는 여자들은 참 좋겠어요” 라고 하면서 시무룩했다.
이어서 “우리는 돈도 없지만 공장에 나가랴, 밤 주우랴, 살림살이 하랴 시간이 없어서 반찬도 제대로 못 하니까 수험생인 애들이 먹을 거 없다고 짜증 부리고, 애들 아빠는 일에 시달리지 먹지도 못하여 배가 등에 붙게 생겼다면서 사람을 심난하게 만드는데 나도 못 먹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살이 찌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며 웃었다.
저 나이면 아이들 학교 공부나 걱정하면서 하느작거리며 돌아다니고 한 참 즐겁게 지낼 나이일 텐데 체념한 듯이 얘기하는 것이 애처로워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왜, 제가 불쌍해 보이세요? 그러실 거예요. 여기는 완전히 딴 세상이고 거지예요. 번번한 옷이나 신발을 하나 제대로 사 입을 수가 있나, 파마를 하고 염색을 제대로 할 수가 있나, 외식 한 번 제대로 할 수 있나, 아이들한테 그 흔해 빠진 햄버거 하나 사 줄 수가 있나, 그럴 듯한 여행을 한 번 갈 수 있나,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볼 수가 있나......, 시골 사람들은 평생을 이렇게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요. 그렇게 해봐야 남는 것도 없지만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어요” 라고 말하며 수줍은 듯이 속이 허연 머리를 손으로 걷어 올렸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내가 그 여자를 산골 소녀를 보듯이 한 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사래를 치며 “아니에요. 열심히 일하시고 쉬시는 모습이 어떤데요? 보기 좋다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나쁠 것도 없는데요 뭘. 빨리 집에 가시어 밥 따끈하게 해 드시고 부은 팔과 다리를 따끈한 물에 대고 푸세요. 무슨 지병이 있는지 모르지만 팔다리가 붓는 것은 피곤하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그리고 헤진 작업복은 갈아입으면 되는 것이고, 땀 냄새는 닦으면 되는 것인데요 뭐.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사는 거 다 마찬가지로 잘 산다고 해봐야 별 수 없어요. 이렇게들 열심히 사시니 나중에 복 받으실 거예요. 그러니 몸 다치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 여자가 그런 날이 있기나 할런지 모르겠지만 다 늙어 꼬부라져서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 일어나서 어두워지려고 하는 길을 재촉하였다.
오면서 그녀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생각하니 율녀(栗女)가 “제가 불쌍해 보이세요?” 라고 한 말이 귓전을 때렸다.
나도 별 수 없는 것을 누구를 동정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이니 누가 누구를 불쌍하다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일하면서 구차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아픔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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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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