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가 어떻게 했었어야 후임자가 편하고 좋을까?
전임자나 후임자나 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하면 탈이 없다.
좋고 나쁘고 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후임자가 소속된 곳마다 고유한 특성과 관례가 있어서 알게 모르게 플러스마이너스 알파(±α)가 작용하기 때문에 법과 원칙이 순리대로 그대로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알파 중의 하나는 전임자의 행적과 실적이다.
후임자는 정식으로 부임하기 이전에 비선 라인을 통하여 전임자가 재임기간 동안에 어떻게 하였는지 알려지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은밀하게 파악해본다.
그 것은 전임자의 공과를 따져 칭찬이나 비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치보복 같은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조직 문화와 정서 상 전임자가 한 일에 대해서는 잘 했던 잘 못했던 논하지 않고 불문에 붙이고 다 떠안고 가는 것이 관례다.
후임자가 전임자의 지난날들을 알려고 하는 것은 전임자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후임자의 운신의 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후임자는 전임자가 행적이 올바르고 실적이 좋아 조직원과 고객(주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아 유사한 다른 곳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곳이어야 좋을 것 같다.
즉, 전임자가 길을 잘 닦아놨어야 후임자가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아 일 하기가 좋고 지내기가 편안할 것 같다.
그러나 원론 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그 정반대이다.
전임자가 잘 했으면 후임자가 가서 무슨 일을 해 봐야 빛이 안 나고, 잘 해봐야 현상유지 하는 본전이어서 후임자는 전임자의 그림자에 가려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즉, 전임자가 길을 망가트려놨어야 후임자가 자유자재대로 일 하기가 수월하고 무슨 일을 조금 해도 돋보이게 된다.
살아있는 생명체에 생명주기(Life Cycle)가 있어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는 것처럼 조직도 주기가 있어 잘 운용될 때가 있으면 잘 안 될 때도 있다.
주기가 오차 하나 없이 정확하게 오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호불호(好不好)가 번갈아 온다.
전임자가 잘 하는 호황기였다면 후임자에게는 그 호황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잘 못 하는 불황기가 도래하고, 전임자가 불황기에서 헤맸다면 후임자가 그 불황기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호황기가 오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임자가 아무렇게나 하여 원성을 샀다면 후임자가 가서 힘 안들이고 그 원성을 조금 누그러뜨리기만 해도 칭찬이 자자하여 유능한 리더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전임자에게는 죽어야 정승 난다는 격언이 통하고, 후임자에게는 죽은 공명이 산 사마달을 놀라게 한다는 삼국지의 구절과 해학적인 전임자복(前任者福)이라는 말이 통하는 것이다.
또한 취임식장에서 후임자 취임사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는 표현인 “존경하는 전임자의 탁월한 지도력과 위대한 업적에 감사드리며 그를 계승하여......,” 운운하는 것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어서 예외도 있다.
찌그러졌던 전임자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도 못 하여 아주 깨져버리는 옥상옥의 경우가 그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에는 이상한 것이 생성되어 나오는 돌연변이가 있다.
그리고 순리대로 흘러가는 자연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불가사의한 일도 일어난다.
생명체와 자연이 그렇듯이 우리 인간 세계도 순리 또는 역리대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혼조 양상을 띠어 갈피를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전임자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곳이 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세세하게 따질 것도 없었다.
전임자가 재임하는 동안 예측할 수 없는 횡보와 좌충우돌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고, 사람들은 코드가 안 맞아 질리다 못 해 아주 포기한 상태로 전임자가 떠나갈 날만을 기다리며 인내의 날들을 보냈다.
그 고난의 열매였는지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전임자가 떠날 때가 되었다.
전임자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워 환의의 찬가라도 불러야 하겠지만 우리네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전임자를 융숭하게 대우하였고, 전임자는 떠날 때는 말없이를 지키며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를 남기고 조용히 떠났다.
사람들은 한 건을 해결하고 나니 후련했다.
지난날의 시름을 잊은 채 그 동안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번에는 좋은 사람이 올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하고 한껏 희망에 부풀어 영접 준비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후임자 발령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하여 털썩 주저앉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토끼가 나가니 호랑이가 들어왔다며 한탄을 했다.
그도 그럴 만 했다.
후임자는 전임자와 난형난제로서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라는 소문이 나 있었고, 발령 소식이 알려지자 후임자의 지난 좋지 않은 행적들이 입에 입을 통하여 순식간에 쫙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기하기 위해서는 강약을 조절하여 하는 것이 인사발령 원칙이다.
전임자가 강했으면 부드러운 후임자를, 전임자가 점잖고 신망이 두터웠으면 자유분방하고 악명이 높은 후임자를, 전임자가 꼼꼼하였으면 거친 후임자를 보내어 조직의 분위기를 바꿔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인사권자가 어째서 자빠진 놈들은 그대로 죽으라며 얕보는 식으로 전임자보다 더 어려운 후임자를 보냈는지 상식에 어긋나는 인사라면서 불불거렸다.
그러나 그를 극복해야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기왕에 그렇게 된 것이고, 그런 인사발령을 하는데 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하며 스스로들을 위안하였다.
전임자처럼 별쭝맞지는 않을 거야, 전임자한테 찌들대로 찌들어 침체되었다는 것을 캡틴은 알고 있을 거야, 전임자가 과거에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져 잘 해 볼라고 할 거야, 다 함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혼자 그렇게 막 나가지는 않을 거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변학도 같은 탐관오리가 있다는 것인지 잘 못된 소문일거야, 어찌 됐거나 앞으로 몇 년간은 후임자와 동고동락해야 하나 거기에 맞추도록 노력해야지 어쩌겠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후임자가 부임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내 근심이오, 불안이오, 절망이오, 도망가고 싶은 심정들뿐이었지만 후임자가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고 막연한 희망을 걸어보는 것 이외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후임자가 부임하는 첫날의 모습은 소문대로였다.
세월이 약이라는 것 맞는 지 안 맞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것은 그 후임자가 있는 동안은 정체된 시간이니 그가 떠난 후에나 생각해볼 일이었다.
부임 때부터 지금까지도 묻힌 세월의 정지는 그대로여서 조직은 피폐화 되고 조직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전임자는 후임자 복이 있다며 세상에 그런 일도 다 있다고 웃었다.
후임자는 인기 없었던 전임자라는 것을 발판으로 하여 가만히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하여 송덕비까지 세워 줄 텐데 그래도 전임자가 백번 나았다고들 하였다.
후임자는 전임자 덕은 하나도 못 보고 다 차버려서 죽사발이 나고 말라비틀어지고 있어 큰 망신을 당하고 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상호 존중하는 사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라 질투와 시샘의 사이다.
물론 후임자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있었던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임자의 면면을 살펴보고 주판알을 튕겨보면 얼마만한 실적을 올리고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계산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계산서를 뽑아 놓고도 행하지 못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묵은 술이 광술 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며 전임자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하는 것은 전임자 복을 살리지 못하는 후임자의 실패와 무능과 아집과 오만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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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