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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순수한 손(手), 오염된 마음(心)

by Aphraates 2008. 10. 7.

사회복지관인 발달 장애인 주간 보호센터에서 봉사 겸 사회복지사 현장실습에 참가한 지 삼 주 째다.

그런 시간을 내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회봉사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곳에서의 시간을 좀 줄이더라도 해 보고 싶었던 일이고, 기회가 주어지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했으면 하던 일이어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정해진 날에 가서 그 곳의 아이들 하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장난하고, 오락을 하고, 밥을 같이 먹고 하는 그냥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단순한 일이지만 참 좋다.

그 곳에 나오는 아이들은 복지관 인근에 사는 아이들로서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부모나 친지들이 데려 오고 데려다 주는 남녀 중고등학교 학생 열 명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 돌보는 일을 전담하는 복지관 직원은 팀장 선생님을 비롯하여 세 분이고, 요일마다 바뀌는 전문 및 자원 봉사자들이 꽤 많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서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몰라 그 들을 도와준다기보다는 내가 도움을 받는 형편이었다.

들어서면 먼전 와 있는 아이들의 인사와 함께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야 했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고 뭘 물어보면 피동적으로 대응했고, 기존의 봉사자들이 뭘 부탁하면 그를 따라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 파악이 되면서부터는 그런 불편함과 피동적인 것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부터 일이 손에 잡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곳은 종합복지시설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어느 발달 장애 아이들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는 것 같았고,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직접적인 비용이나 시설을 운용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을 거 같았지만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전담 직원 세 분도 젊은 사람들인 점에 비하여 잘들 하시고, 대부분이 대학생들인 남녀 자원 봉사자들도 정성을 들여 잘 하시고 있다.


헌데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아이들 한결같이 다 순진하고, 환하고,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말썽을 부리는 경우가 없다.

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른 아이들이 하는 대로 쫓아가지 못하고 따분하여 하품하며 멍 하니 있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야 깜짝 놀라서 웃기는 하나 화를 내는 경우가 없다.

편식을 하여 선생님이 옆에서 같이 먹어야 따라서 배식된 밥을 다 먹는 아이들이 몇 있긴 하지만 반찬 투정을 하거나 남기는 경우가 없다.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짓을 하다가도 선생님이 지적해주면 바로 수긍을 하지 반항하거나 떼를 쓰는 경우가 없다.

초등학교 저 학년의 아이들이 해야 할 수준의 국어와 산수와 노래 공부를 하면서도 미안해하거나 의기소침 하는 경우가 없다.

복지관에서나 선생님들이 정한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없어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런 단계까지 이르기까지 전담 직원들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테지만 아이들이 그만큼 순박하고 구김이 없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체격이 우람한 남자 아이가 L군이 있다.

지도자 선생님을 따라 장구를 배울 때 보면 다른 아이들한테는 장구가 커서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같은 크기의 장구인데도 거구인 그 아이 앞에 있는 장구는 꼭 장난감 같이 작아 보인다.

선생님들이 직접 지어서 배식하는 접시에 담겨있는 밥과 서너 가지의 반찬을 보면 적지 않은 양이지만 그 아이가 국사 발에 말아 몇 숟가락 먹으면 금세 없어진다.

또한 운동을 할 때 보면 웬만한 아이들 서너 명이 매달려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거구인데다가 건장하다.

그렇게 우람한 아이인데도 하는 행동이나 웃는 것을 보면 그렇게 순진할 수가 없다.


어제는 노래 공부를 하는데 한 손으로는 악보를 들고 한 손으로는 자기 반 밖에 안 돼 보이는 체구의 새로 오신 여선생님(대학생 봉사자)의 손을 꼭 잡고 빙그레 웃는데 여간 천진난만해 보이지 않았다.

처음 그런 상황에 접한 그 여선생님은 아이가 그러는 것을 묵인하면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였고, 다른 아이들은 노래하면서 박수를 치는데도 그 아이는 선생님 손을 안 놓고 꼭 잡고 있었다.

그러자 노래 반주를 하시던 팀장 선생님이 돌아다보시면서 “OO이가 새로 오신 선생님이 좋은가보다. OO야, 이제는 이거 해야지” 하면서 손짓을 하니까 그제야 다시 한 번 씩 웃으면서 손을 놓고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 여선생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는데 그 것은 팀장 선생님이 그 아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가보다 라고 한 말이 쑥스러워서였다.

다년간 그런 아이들과 생활하신 팀장님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그게 안 되면 짜증을 부리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알고 자연스럽게 한 말이지만 처음 봉사 나온 그 여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고, 그 아이와 나이 차이가 나기는 해도 이성적인 관계로 이야기하는 줄 알고 부끄러워 한 것이었다.

나도 팀장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 할 떼는 신체 발육이 왕성하고 이성에 눈뜨는 아이들한테 너무 직설적으로 남녀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였다.

그렇지만 팀장 선생님이 자원봉사자한테 “걱정하지 마세요. 그 아이가 선생님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라고 말하는데 아이들의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을 세태에 짓눌린 엉뚱한 잣대로 재려고 한 내 생각이 잘 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오늘은 C양이 내 손을 꼭 잡고 움직였다.

“선생님 이 것 좀 해주세요” 하면서 손을 잡고 이끌어 다가가서 자세하게 설명해줬더니 방과 후 학습이 끝날 때까지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한테 잘 해주는 나한테서 뭔가 편안한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좀 귀찮기도 했고, 손이 잡혀 내 맘대로 뭘 할 수가 없으니 불편하기도 하였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는 못 했다.

세파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손이 세파에 찌든 손을 잡고 세파에 오염된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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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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