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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변복(變服)

by Aphraates 2008. 10. 8.

갤러리에 들릴 일이 있어서 퇴근 하여 아파트에 주차장에 파킹하고 길을 나섰다.

갤러리 주변 건물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가로등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실제로 백화점이나 상가에는 얼마나 활력이 있고 장사가 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거리의 풍경이나 바쁘게 움직이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봐서는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는 말이 엄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런 역동적인 분위기라면 예년에 비하여 잠잠한 남태평에서 올라오는 태풍 대신에 미국 발 경제 허리케인이 아무리 내습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를 건널 때면 불만스러운 신호 체계 때문에 짜증나는 사거리에서 빨간 등이 들어와 멈춰 섰다.

차량 통행이 항상 많은 향촌 직진 길은 신호를 길게 주고, 차량 통행이 늘 적은 다른 직진 길은 신호를 짧게 조정하면 교통 소통이 한층 더 잘 될 텐데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길이나 저 길이나 신호주기가 동일하거나 비슷하여 향촌 길은 차가 밀려 번잡스럽다.


신호주기가 그래서 건널목 치고는 약간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덕분인지 옛날을 회상케 하는 진풍경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같은 길을 건너려는지 두 여자 아이가 다가왔다.

짧은 청바지 미니 스커트와 가벼운 블라우스를 입고, 옅은 얼굴 화장과 립스틱을 바르고, 짙은 눈썹과 귀걸이, 굽이 약간 높은 구두와 귀티 나는 핸드백을 메고 있는 것이 청순해 보였다.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는 데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 같으면 재잘거리면서 신호가 빨간 불이건 말건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건넜을 텐데 안 그러는 것을 보면 제법 성숙한 거 같기도 하고, 말없이 점잖게 서 있는 것을 보면 인근 어디선가 근무하는 오피스 걸 같기도 하고 가늠이 안 되었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어 건너편에 도달하였을 때 중학교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쳐 맨 몇몇 아이들이 만나서 “야, 예쁘다. 이 거 어디서 샀냐? 화장 빨도 잘 받고 코디도 잘 맞는다” 하며 떠드는 것을 보고 어느 나이 대인지 아리송하던 그 둘이 중학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들의 눈이 그런 것인지, 나이 들어가면서 감각이 없어지는 것인지 아무리 교복을 벗고 좀 나이 높게 들어 보이는 사복으로 변복하였다 하여도 중학생 아이들을 보고 숙녀인지 어린 학생인지 분간을 하지 못 하다니 내심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내 눈이야 그렇거나 말거나 내가 정장을 했을 때는 어떨지 모르지만 캐주얼 복으로 변복하였을 때는 나처럼 착각해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머리에 이마빡이 반들반들 한 것이 한 참 나이 적어 보인다는 주변사람들의 생각과 그래도 먹은 나이가 어디 가겠느냐며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도 그래주기를 은근한 바라는 마음이 교차하는 나인데 이제 그런 것을 생각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는 성당 저녁 미사에 다녀 온 데보라도 오늘 변복하고 가서 착복식 하라는 성화를 받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후꾸오까의 백(白) 작가가 그 곳의 특산품으로서 편하게 입어도 백 년은 입어도 될 것이라며 데보라 아줌마한테 선물 한 특이한 재질과 디자인의 개량 기모노를 입고 갔었단다.

보는 사람마다 무슨 옷인지 모르지만 범상치 않다고 하기에 그 옷의 유래와 입게 된 사연을 얘기해줬더니 멋진 옷과 멋진 인생과 멋진 사람이라고 부러워하더란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데보라의 그 변복은 다른 변복과는 달리 참 의미 있고 재미있는 변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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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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