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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회비(會費)

by Aphraates 2008. 11. 11.

기계가 잘 돌아가려면 윤활유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회(會)가 잘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성능의 기계일지라도 적절하게 윤활유가 칠해져야지 안 그러면 기계가 잘 안 돌아가고 망가진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회일지라도 그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돈이 들어가야지 돈이 없으면 회가 흐지부지되어 유명무실하게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돈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천박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 차원에서 비난만 할 것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다.


국제연합(UN)에는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가입돼 있다.

인류 공영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거나 지구촌 어디에선가 분쟁이 발생하면 UN과 그 산하 단체를 통하여 공식적인 활동을 한다.

말하자면 지구촌의 파수꾼이다.

그런데 그 최고 최대인 국제기구인 UN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본 경비만 해도 연간 44억$이라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 그 돈은 어디서 나올까?

전쟁을 종식시켜주고 수고비로 돈을 받는가?

수익 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가?

서양 사람들은 재산상속을 안 하고 기부하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세계적인 억만 장자들이 인류와 지구를 위해 잘 써 달라고 기부를 하는가?

아니다.

그런 돈이 아주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일정한 비율로 분담하는 회원국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얼마만큼의 분담금을 낼까?

UN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말빨 꽤나 서는 강대국이자 부자 국가들이 대부분이 분담하고 많은 나라들이 이름만 등재해 놓고 맨 입으로 회원국 역할을 한다.

일반 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UN에서도 마찬가지로 회비와 찬조금 많이 내는 나라가 형님 나라고, 어른 행세를 한다.

그 중에서도 미국이 으뜸이다.

분담금(22%수준)을 많이 내니 당연히 입김이 세고, 지구촌 경찰의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미국이 UN회비를 체납하고, 분쟁이 일어나면 자기들은 주선만 하고 돈은 다른 나라들한테 떠맡긴다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전주(錢主)인 미국과 그를 따르는 회비 많이 내는 강대국(일본, 독일 등)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UN은 제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UN에 가입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분담금도 2%수준으로 미미하지만 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로 입지가 넓어지고 있는데 뻗어나가는 우리나라의 국력이 뒷받침됐을 것이다.


세계적인 조직인 UN이 회비로 운영되듯이 크고 작은 여타 조직들도 마찬가지로 돈이 있어야 된다.

나라에는 국민들의 회비인 국세가 있다.

지방에는 주민들의 회비인 지방세가 있다.

회사에는 사원들의 회비인 재화와 용역의 판매 수입이 있다.

가정에는 가족들의 회비인 가계 수입이 있다.

그런 회비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회비 때문에 말썽이 그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회비는 잘 관리 되어야 한다.

먼저, 회비 납부는 공평해야 한다.

무조건 두(頭) 당 얼마씩 기본회비를 내기도 해야지만 부자와 빈자가 차별화되어 특별회비도 내야 한다.

나는 이 만큼 내니 너도 그 만큼 내라고 한다면 먹고 죽으려도 없는 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소말리아 같은 나라는 한 푼도 못 낸다고 하는데 그들 몫까지 내 줘야 한다니 우리가 무슨 자선 사업가냐?

우리도 쓸 데가 많아 낼 수 없다며 두 다리 쪽뻗는 부자 나라가 있다면 그는 큰 나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다음으로, 회비는 적절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내 돈이 아니라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써 대고, 쓰다가 모자라면 더 걷으면 되니 돈 걱정하지 말라는 식의 무책임이어서는 안 된다.

좋은 의미로 좋은 곳에 쓰자는 회비이니 회원들한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이 사는 지역은 회비도 안 내고 머리수만 채우는 무임승차꾼들이니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네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한다거나 부자 나라들이 사는 지역은 회비도 많이 내기 때문에 응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니 작은 일만 있어도 무제한적으로 돈을 퍼 넣는 불평등은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회비는 정확하게 결산되어야 한다.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가 나갔는지, 정해진 대로 잘 내고 잔고가 얼마인지 명확하게 밝혀야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의혹이 생기면 문제가 발생하고 파탄이 일어난다.


어디를 가나 사람과 함께 돈이 문제인데 회비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로 인하여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의기투합하여 출발한 회가 깨지고, 내 살을 떼어 줄 것 같이 가깝던 회원들이 갈등과 반목을 하고, 다른 걱정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때문에 망신살 뻗치며 사람이 이상해지고 하면서 신혼부부같이 그 좋던 금술이 깨져 차라리 서로다 몰랐던 것이 나았다고 한탄하는 것이다.

먹을 것이 있으니 사람이 꼬이고, 사람이 꼬이다 보니 다툼도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회비 문제로 회의 본래 모습이 훼손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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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