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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남의 일을 내 일 같이 생각하라

by Aphraates 2008. 11. 13.

대학 수능 시험 날이다.

새벽에 학교 주변을 돌아보니 계속되는 연례행사답게 후배들의 격려가 대단했고, 아들딸들이 시험을 잘 치르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험추위라는 연례행사답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외국 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날의 표정을 무척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풍경이라고 전한다고 한다.

이 날이 되면 한국국민들은 다 같이 수능 시험을 치루는 학생과 학부형이 된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심지어는 듣기 말하기 평가 시간에는 항공기 운행도 통제한다고 해외 토픽 감으로 소개한단다.

좋게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아냥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중차대한 국가 행사에 모든 조직과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고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다.

입시에 관한 것이라면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과도한 입시열풍으로 볼 것은 아니고 다만 우리가 정도는 약가 넘어섰을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입시 열기를 부끄러워하거나 망국적인 학력 병이라고 자탄할 것은 아니다.

그런 거센 열풍과 대학이 기본학력이 되다시피 한 인재양성의 열성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처럼 잘 사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교육이 문제이고, 천문학적이지만 제대로 파악조차 할 수 없는 사교육비가 망국병처럼 번진다고 걱정이 많지만 오늘 정답이라고 한 것이 내일에는 오답이 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깔끔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내놔라하는 저명한 교육학자도 교육 정책 쪽에 접근하면 나사가 하나 덜 조여진 사람같이 되어 뭐 저런 사람이 앉아 있나 하고 비난을 받는 것처럼 여간 난해하지 않은 것이 교육 문제라고 하는데 자꾸 손질이 돼 가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고, 좋은 방향으로 좀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 열기를 완전히 식힐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능 수험생의 교통 편의를 위하여 1시간 늦게 출근해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1시간을 다 채울 것 까지는 없었다.

학생들이 시험장 가는 것은 이미 끝났고, 입실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지장이 없을 거 같아 평소 출근보다 약간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학교 앞을 지나다 보니 몇몇 사람들이 교문 앞에 있었다.

학교를 바라보고 서성이는 사람, 교문 철창을 붙잡고 기도를 하는 사람,  한 편에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 등등이었는데 처분만 바라는 애틋한 표정들인 것이 언뜻 보아도 수험생 가족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보니 나도 시험 날 행상 동참하는 차원에서 늦게 출근하면서 관심을 갖지만 수험생 학부모인 당신들 당사들 마음이야 오죽하겠소?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듯 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것처럼 온 국민이 수능시험에 동참하는 형국이지만 수험생이나 수험생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야 한 치 건너 두 치라고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아이들이니 실수하지 말고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협조하는 수준인 것이다.

한 때는 수험생 부모로서 애닳던 사람들이나, 본인이 수험생 당사자여서 두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공부하던 젖먹이 아이 엄마들이나 현재의 수험생 부모처럼 노심초사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난날의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또는 옛적을 생각해서 국민적 행사인 수능시험에 동참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나라를 걱정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가 나온 것이다.


남의 일을 내 일 같이 생각하라.

참 좋은 말이고, 그를 잘 실천하면 어려움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천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직접적인 당사자하고 간접적인 관련자들하고는 생각과 온도의 차이가 있다.

아무리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가슴이 넓고 따뜻한 사람일지라도 남의 일이 내일 같지는 못 하다.

내 아이가 수험생일 때는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만사 젖혀 놓고 모든 것을 걸고 쫓아 다녔다.

하지만 서울 명문 대학을 가야할 아이가 실수하여 저기 산골 읍에 있는 지방 대학에 갔을지라도 수험생 학부형을 면하고 나면 그리 급박한 생각이 없어져 한 편으로 물러나서 선배 학부형으로서 후배 학부형한테 충고하는 감칠맛 나는 권리로 갖게 되는 것을 뭐라고 할 것이 없다.


작년에 수험생 아이만큼이나 몸 닳던 선배 학부모한테 이번에 우리 아이가 수능 시험인데 기도 중에 기억 좀 해 달라고 하면 여부 있겠느냐며 벌써 알고 잇고 기도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나온다.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한 발 물러서서는 내가 경험해보니 수험생과 가족에게 너무 관심을 기울이면 그도 실례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이니 적당히 하자고 한다.

그런 소리를 후배 학부형이 듣는다면 언젯적 선배 학부형이라고 그럴 수는 없다며 서운해 할 테지만 내 년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되니 너무 섭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위치가 변했다고 해서 남의 일을 내 일 같이 생각하는 인간 본연의 자세와 갸륵한 마음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고 그저 상황논리에 충실한 것이니 뭐라고 탓할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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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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