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살 때 흥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심사숙고하는 편이 아니다.
내가 정한 필요 기준에 부합된다고 판단이 되면 우선 실행하고 본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런 개념조차도 없었다.
김치 냉장고가 처음 나왔을 때였다.
어디를 가다보니 M사의 대리점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죽 돌아보니 모델은 같고 용량 크기만 달랐다.
종업원한테 소형을 지목하며 “이것이 김치 냉장고라는 거 맞지요? 가정에서 쓰려고 하는데 이 정도면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종업원이 반색을 하며 “중대형은 업소용이고 가정에서는 저 정도 크기면 충분합니다. 지금 폭발적인 인기인데 값이 좀 비싸지만 판촉 세일 기간이라서 유리합니다. 하나 들여 놓으시면 절대로 후회하시지 않고, 사모님으로부터 사랑받으실 것입니다. 아주 잘 선택하셨습니다” 라고 칭찬 일색의 좋은 말만 하였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지만 그렇게 형식적인 판촉활동을 안 해도 알아서 살려고 하는 것인데 괜한 수고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냉장고가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그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다른 집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니 호기심에서라도 관심을 가져볼 만도 했다.
어지간한 집 같으면 당장 풀어보고 설명서를 보면서 어떻게 작동시키는 것인지 시운전도 하고, 얼마나 잘 되는지 성능 테스트도 해 보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외가 마주 앉아서 그걸 왜 샀느냐, 얼마를 줬느냐, 비싼 것이냐 싼 것이냐, 다른 제품은 없더냐 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필요한 것을 산 것이지 충동구매나 후일을 위하여 미리 사다가 쌓아 놓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덤덤했다.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 거 하나 사면서 심사숙고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것이 아니라 여겼다.
꼼꼼히 챙겨 보고 계산해 봐야 나한테 득 될 것이 없고, 덥석 산다고 해서 봉이라고 무시당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대신에 물건의 의미에 대해서 비중을 두었다.
나는 집 사람한테 사 줘서 기분이 좋았고, 집 사람은 필요한 것을 알아서 챙겨주니 좋아했다.
물건 자체나 가격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물건은 제작사에서 소비자 구미에 맞게 알아서 만들었을 것이고, 물건에 문제가 있으면 교환하거나 반품하면 되는 것이니 물건 자체에 대해서는 일단 믿었다.
가격도 장사가 받을 만큼 받고 우리도 줄 만큼 줬을 것이므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당했다거나 하는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숫기가 없는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편리한 것인지, 달관한 것인지, 대범한 것인지......, 그렇게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가끔 다른 사람들로부터 싸구려나 쓸데없는 것을 사 오는 것도 아닌데 뭘 살 때는 값이라도 물어 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며 냉랭했다.
할 만하니까 하는 것이고, 그만한 가치를 하니까 그 값에 팔리는 것일 텐데 뭘 그렇게 따지느냐며 그렇게 따져봐야 개뿔 떼기나 득 되는 거 하나도 없더란 말로 대신했다.
지금도 그런 습관은 여전하다.
손님으로서 진열장을 돌아본다.
그러면 파는 측에서는 어떻게든 팔려고 한다.
자기들의 명예를 걸고 손님에게 권하는 것인지 아니면, 손님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손님에게 맞는 맞춤형 세일즈나 바가지를 씌우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그대로 사서 들고 나온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어도 크게 손해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을 생각하면 작은 것을 놓고 밀고 당겨봐야 별 거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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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 :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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