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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귀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것, 흔하지만 싫어할 수 없는 것

by Aphraates 2008. 11. 10.

성당에 갔다가 미사 참례가 끝나자 바로 집에 왔다.

1주일 만에 만난 교우들과 어울려 점심 식사를 겸하여 모임을 갖는 재미가 솔솔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차를 한 잔 같이 나누고 헤어졌는데 서운하거나 미안하지는 않았다.

다른 일정이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 맛있는 것이 있다거나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다.

아침 식사도 안 하고 지인이 손수 농사지은 것이니 먹어보라며 보내준 호박 고구마 몇 개와 나박김치 한 보새기로 대신하였을 따름이었다.

데보라는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점심 준비를 하려고 주방으로 가면서 대자님이 사 준 야콘 라면을 끓여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별로 생각이 없어서 그러지 말고 있는 대로 간단하게 먹자고 하였더니 그러자고 하였다.

바로 점심 준비가 되었고,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한 그릇 해 치우는데 얼마의 시간도 안 걸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뒹글뒹글하다가 잠이 들었고, 둬 시간 후에 일어났다.

아주 한가로운 주일 오후였다.

지난주에는 워낙 바쁘게 경상도로, 충청도로, 전라도로 나돌아 다녔으니 이번 주에는 집에서 조용히 지내라 하는 것 같았는데 집에 있어보니 그도 그런대로 좋았다.


오후 늦게는 시청 청사 인근의 도심 속의 숲길로 부부동반 산책을 나갔다.

그 곳은 원래부터 녹지 조성이 잘 돼 있어 숲이 무성한 곳이다.

그런데다가 떨어지는 낙엽을 그대로 두어 운치 있는 단풍 숲길이 만들어져 가을 명소가 되었다고 했다.

언론을 통하여 단풍 길이 일품이라는 홍보가 많이 돼서 사람들이 많아 번거로울 거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를 안 보고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거 같아서 다른 곳도 들릴 겸하여 한 번 돌아보자며 숲길의 시작인 샘머리 공원으로 갔다.

샛노란 은행나무 잎과 새빨간 단풍나무 단풍과 떨어져 수북이 쌓여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환상적인 콤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 호젓한 시간을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공원 숲을 지나 광장으로 나오다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가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켰지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미안합니다” 라는 말 한 마디로 끝났다.

깔깔거리는 아이 웃음소리가 들려 뒤돌아 봤더니 작은 아이가 낙엽을 한 움큼 쥐어 아빠한테 던지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게 깨끗한 도심 속의 낙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못 만질 정도로 오염된 것은 아니니 많은 아이들이 와서 놀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낮인데도 어둡게 느껴지는 숲길에는 우리처럼 산책하는 몇몇 부부와 학생들이 있었다.

대전 시민들은 이 좋은 곳을 놔두고 발품 팔며 다들 어디로 갔는지......, 다른 곳으로 놀러 나간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좋은 것을 좋아하지 못 하거나 몰라서 멀리 나가 고생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 속의 숲길은 너무 쓸쓸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반갑게 인사하는 향촌 주민을 만났고, 뜀뛰기를 하며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대신 찍어주면서 쓸쓸함이 조금 만회되긴 하였다.

또한 영어를 사용하는 젊은 서양인 남녀와 일본어를 사용하는 모녀인 듯 한 두 여인이 뭐라고 하면서 사진 촬영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인 시민들보다도 남들이 더 좋아하고 추억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 청사를 지나 보라매 공원에 들려 차 한 잔을 하면서 주변 경관을 보니 참 멋있었다.

이런 둔산 신시가지를 두고 그 곳은 공기가 안 좋고 복잡하여 싫다는 소리를 했다는 변두리 주민들이 불쌍히 여겨졌고, 그 들도 이곳으로 와서 한 번 살아보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 것이라며 함께 웃었다.

오피스 빌딩가와 식당가를 지나쳤다.

주일날 저녁이어서 그런지 오피스 빌딩가와 식당가는 한가하였고, 늘 북적이던 놀자 골목에도 노점상과 사람이 적었다.

밤이 되기 전인데 젊은이들이 모이는 놀자 골목에 간 것은 예전에 대흥동 성심당 골목에서 먹던 떡볶이와 오뎅 국물이 생각나서였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 시 길을 건너 갤러리로 가서 새로 단장된 1층 매장을 둘러보았다.

거기에서도 한 쪽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국내 명품이라는 S 화장품 코너를 보고는 귀하지만 가까이 있어 좋아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외국 브랜드가 그만한 값어치를 하니까 고가이고 찾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렇다고 우리 제품이 그렇게 외면당할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런 곳에서는 기를 펴지 못 하고 행세를 하지 못 하다니 안타까웠다.

아이 쇼핑을 하는 우리와는 달리 비싼 외국 브랜드의 상품을 사는 사람들도 제법 되었다.

경제가 어렵다고 같이 움츠릴 것이 아니라 여유 있는 사람들은 돈을 써 주는 것이 경제 순환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고, 사치한다고 눈총 받던 사람들이 경제난 해소에 동참하는 애국자들로 변모한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와서는 내가 “백화점에서 명품 구경 잘 했으니 우리는 김치국이라도 마셔야 되는 거 아닌가? 그냥 김치국 마시기는 그러니 저기 떡 집이 있는데 떡이라도 한 볼테기 사오지 그래” 라고 했더니 “아침하고 점심을 시원치 않게 먹었으니 배고플 때도 됐지”하면서 희미한 불이 켜져 있는 길가의 떡집으로 갔다.

인절미와 떡국 떡을 조금 샀다며 검은 봉지를 들고 온 데보라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즐비하게 있는 피자집과 제과점에 안 들어가고 떡집에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귀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것도 많겠으나 흔하지만 싫어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이다.

집에 와서는 몇 개 안 되는 인절미 판과 김치국을 퍼다 놓고는 인절미 먹다가 질식사한 노인도 있다지만 그런 거 신경 쓸 새 없이 꿀떡 꿀떡 먹고, 후르륵후르륵 마시고는 아쉬운 맘이 들기 전에 “오늘 저녁 식사 끝!”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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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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