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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김구만

by Aphraates 2009. 6. 26.

멀리 스위스에 계신 분께서 김구만 이라는 가수의 노래를 올리셨다.

구독리스트를 통하여 그 블로그에서 오는 다른 음악 파일들은 다 열어보고 있다.

그러나 그 가수 이름의 파일은 안 그랬다.

전에도 몇 번 올려졌었지만 열어보지 않았고, 이번에도 열어 보고 싶지가 않았다.

왜 일까?

그 가수가 어떤 스타일인지는 고사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름이 특이하니 궁금하면 궁금했지 굳이 그렇게까지 피할 것은 없을 거 같은데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그 이름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존함이다.

어렸을 적에 그렇게 부르는 것을 무척 싫어하였는데 그 후유증 때문이다.

아버지의 존함은 원래 호적상으로는 계(癸)자 득(得)자 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한자 표기도 없는 아명으로 구만이라고 불리셨다고 한다.


아버님 형제자매 분은 일곱 분으로 큰아버지 다섯 분, 고모 한 분이셨다.

아버지께서는 그 막내이셨다.

나도 여동생 둘을 빼면 막내로서 수십 명 되는 사촌들의 꼬드백이어서 셋째 큰 아버지와 고모만을 뵜을 뿐이다.

아버지께서 나신 시대는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때였으니 그 시절에 자식이 일곱이라면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렸을 때 돌아가신 분들도 계셔서 아버지께서는 한 열 번째는 되셨던 것 같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제발 애 좀 그만 나게 해달라고 하는 의미에서 아버지 이름을 구만이라고 지으셨고,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아버지께서 막내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어른들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는 것이 싫었다.

심부름을 가서 그 집 어른께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오냐, 네가 구만이 막내아들이냐? 그 놈 참 똘똘하게 생겼다”라고 하셨다.

그 소리가 무척 듣기 싫었지만 어른들한테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심부름을 시키시면 심부름 자체보다는 심부름 가는 집이 어떤 집인지를 먼저 생각하여 아버지 이름을 부를 거 같으면 학교 선생님께 가 봐야 한다는 식의 핑계를 대며 다음에 가겠다고 하곤 했었다.


아버지 이름을 갖고 놀리는 것도 싫었다.

나보다 큰 형들이 아버지 이름을 갖고 놀리면 뭐라고 하지는 못 하고 표독스럽게 인상 쓰며 쳐다보는 것으로 끝났지만 내 또래들이 그랬다가는 그날은 누가 터지더라도 코피 터지는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이름때문에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일 거 까지는 없었을 거 같다.

그러나 그 때는 아버지 이름을 구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창피했고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형들한테 장사하는 장부 같은 것에는 아버지 이름을 호적대로 쓰라고 뗑강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런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동명이인인 김구만이라는 가수의 노래가 올라왔으니 선뜻 열어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그런 가수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파일을 열어보게 됐다.

노래를 들어보니 내 취향의 창법이었고, 자료를 검색 해보니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 스타일의 여자 가수였다.

바로 필이 통하기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리메이크 되어 올라온 그 가수의 노래를 몇 번 들었다.


어렸을 적에는 사랑하는 아버지이셨기에 구만이라고 함부로 이름불리는 것이 싫었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그렇게나마 불리 기회도 없는 것이 슬펐었는데 이제 다시 그 가수를 통하여 아버지 이름을 부르게 되었으니 그 도 인연이 아닌가 한다.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그 가수도 크게 성공하시기를 바라고, 그를 알게 해 주신 스위스 분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느님 품에 안기시어 평안히 계실 아버지깨서도 이런 인연을 내려다보시며 재미있어 하실 테니 자식된 입장에서 참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http://blog.daum.net/kimjyyhmhttp://kimjyykll.kll.co.kr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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