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용 씨가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 돈벌이를 하는 최대 성수기여서 몸이 열 개라도 부지 못 할 정도로 바쁘다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몸도 시들고 맘도 식어 쓸쓸하지만 그래도 은근히 운치있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대했는데 틀렸다.
그래서, 저래서, 이래서 맘 아픈 일이 생겼다.
근 이십 여 년간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잘 지내던 G였다.
사소한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는 나를 형님 형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고, 나 또한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아우님 아우님 하면서 잘 해 줬다.
근본을 잘 알지도 못 하면서 인생 중간 즈음에 만난 사람들 끼리 그런 관계를 갖기도 힘들 텐데 그 연결 고리는 연연히 이어지는 신앙이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맘이 아팠다.
G가 동업한 사업에서 사기를 당하고 실패를 하였다.
오랫동안 쌓아 온 경험과 인연을 바탕으로 하여 고난을 극복하고자 갖은 노력을 다 하였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늪을 빠져나오지는 못 했다.
회생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동분서주하다가 자포자기한 것을 보고도 도와준다는 것이 고작 가끔 술이나 한 잔 씩 같이 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빈 말 뿐이었다.
저래서 맘이 아팠다.
공과 사가 확실하고, 끊고 맺는 것이 명확하던 G가 흔들렸다.
가증되는 어려움 속에서 불사조가 아니고서야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를 시도도 해 보고, 부모형제한테 손을 벌리기도 하고, 여러 사람한테 돈을 빌려 돌려 막기도 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살던 집은 금융기관에서 붙인 경매로 날아가 빚잔치를 했고, 단칸방으로 이사하여 뭔가를 해보려고 했다.
잘 풀리지를 않고 날로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돈 좀 빌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구차한 처지가 됐다.
그런 지경인데 사람이 안 변할 수가 없다.
살며 행동하던 반경 안에서는 얼굴 한 번 안 보일 정도로 얼씬도 하지 않았고, 도움이 되고 싶지만 도와줄 수 없는 형편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몇몇만 가끔 선술집에서 만난다는 얘기가 들렸다.
나와도 유선 접촉이 있었다.
몇 년도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현업에 있을 때 전북 군산 쪽으로 가는 도중에 그랬으니 5년은 넘은 것 같다.
G가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면서 좀 빌려 달라고 해서 일부러 차를 돌려 인근 은행 있는데 까지 가서 넣어줬다.
전에도 한두 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바로바로 해결이 됐었다.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 그런 정도는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래서 맘이 아프다.
G는 왕래는 물론이고 어찌 지내는지 소문도 안 들렸다.
내가 꿔 준 돈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도 없었다.
나도 퇴직 후에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지난 여름에 몇몇 건의 채권채무관계를 깨끗하게 정힌다는 차원에서 G한테 어려운 줄 알지만 빌려 준 돈 좀 해결하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구월이나 늦어도 시월까지는 넣어주겠다고 답이 왔다.
시월이 다 끝나 가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다시 문자를 넣었다.
재촉한 결과인지 오늘 일부 해결이 됐다.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반절을 입금하고 나머지는 조만간에 넣겠다는 문자와 함께 야반도주하듯이 동네를 떠날 때 하지 못한 쌍 시옷(ㅆ) 자 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줄 알라고 막말을 적어 보냈다.
내 눈을 의심하고 다시 한 번 들여다봤지만 확실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혹시 내가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일이나 언행이 있었는지를 먼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리 뒤돌아봐도 그럴만한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행여 그런 일이 있었을지라도 감히 그가 나한테 그럴 수는 없다는 분노가 일었다.
G는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안 갚아도 되는 돈을 갚는다는 것처럼 당당한 태도였다.
막 사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거야 본인 문제인데 조건없이 선의로 돈을 빌려주고 왜 이런 맘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괘씸하기도 했다.
당장 부르거나 전화를 통하여 평소에 내가 어떻게 해 줬는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혼꾸녁을 내고 싶었지만 사람이 얼마나 망가지고 다급하면 그럴까 하는 측은지심이었다.
이에는 이 귀에는 귀라는 식으로 할 수도 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고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느라 혼났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나 꼭 그 격이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가치도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왜 그런지 얘기나 들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정도의 신뢰관계라면 이미 다 끝난 얘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의 부덕함이라 탓할 것도 없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고, 그 도 그 중의 하나이니 O 밞았다 여기고 인연을 없었던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니 더 이상 맘에 두지 않기로 작정했다.
일그러진 시월의 마지막 날은 아니지만 감정이 무디지 않기를 바라며 뭔가는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했던 시월의 마지막 밤도 못 되는 것 같다.
G 건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했다.
화해까지는 몰라도 용서는 하기로 했다.
사비지심(是非之心)하라 하거나 수오지심(羞惡之心)할 것도 없다.
나도 부족한 인간이기에 한 번의 용서 이상으로는 더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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