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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본데

by Aphraates 2014. 9. 21.

가난한 집 아이지만 몸가짐이 가지런하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갸륵한 아이를 보면 어른들은 “그 놈 참 보면 볼수록 본데있다” 라고 칭찬의 말씀을 하시며 흐뭇해 하셨다.

반대로 부유한 집 아이지만 몸가짐이 흐트러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를 보면 “그 놈 참 보면 볼수록 본데없다고 꾸중의 말씀을 하시면 불평해 하셨다.

이분법적이거나 흑백논리가 아니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이거나 영원한 적이라고 피아구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부자의 횡포와 빈자의 고통을 권선징악(勸善懲惡) 차원에서 띄우고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게 그리 흘러가고 있다.

 

날씨가 조석으로 틀리고, 어르신들의 건강도 조석으로 다르다고 하더니 나의 어제 하루가 그랬다.

오전은 따사로운 햇볕에 구질구질한 비가 내리는 호랑이 장가가는 형상이었고, 오후는 잔뜩 찌푸린 음산한 하늘에서 한 줄기 빛줄기가 내리는 그 얼굴에 햇살의 형상이었다.

 

먼저, 오전의 일이다.

 

후배님 여식 결혼식장에 갔다.

혼주 측으로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사스런 날이고 하객 측으로 보면 아무리 말을 해도 부족한 축하의 날이자 웃음 가득한 해후(邂逅)의 자리인 잔칫집에서 귀싸대기 한 대 올려 칠 수도 없는 사람이 한 사람이 나타나 물을 흐려 놨다.

해가 서쪽에서 뜨려고 그러나 별 일이었다.

신랑 신부나 혼주들과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여태껏 어느 혼가나 상가에서 본 적이 없고, 안 나오기로 호가 난 사람이 웬 일인가 싶어 궁금했다.

떨떠름하지만 내색을 할 수도 없는지라 관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가 왜 나타났는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다음 달에 자기도 딸을 시집보내니 꼭 와달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목불인견의 그 모습을 더 바라볼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 주책없는 사람은 누가 반갑다나 지인들이 몇몇이 모여 있기만 하면 슬며시 다가와 끼어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싫다는 눈총을 줘도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가관이었다.

아무리 본데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사는 이치가 어떻고, 자신의 현위상이 어떤지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러고 다니는 것을 보니 십 원짜리 동점만도 못 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오후의 일이다.

 

갈마동 성당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도안지구로 이사를 가신  장(張)이사벨라 자매님의 모친상 문상과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데보라와 함께 갔다.

부군과 아이들이 있을 때는 조심했지만 나는 그 자매님을 꼬맹이라 애칭 하였고, 그 자매님은 나한테 형부라고 했다가 오라버니라고 했다가 오락가락하면서 자별하게 지냈다.

꼭 그래서 간 것은 아니었다.

몰랐으면 할 수 없지만 알게 된 이상 가서 망자를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작으나마 그를 실천하는 것이다.

미사 참례자들과 문상객들은 타 본당 교우 분들이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단 한 분 그분은 그 곳에도 여지없이 나타나셨다.

대중가요처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가까이 지는 집이든 아니든 어디를 가도 약방의 감초처럼 나타나시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분이다.

시간이 많고, 돈이 많고, 건강이 좋고, 뭔가 뜻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생활 자체가 그렇다.

 

남(南) 마태오 형제님이셨다.

나와 함께 사목회 봉사도 하셨고, 1주일이면 성당 내외애서 몇 변이고 마주치는 사이이지만 그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나란히 앉아서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떠나보내는 망인이나 남아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 이런 만남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에 기도하는 맘이 편안했다.

장례미사를 집전하시는 진산 성지 이(李) 비오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정 마리아 자매님을 뵐때 마다 떠올랐다는 성경 “잠언 30.7-9”1을 말씀하시어 감명깊었다.

 

사람 사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가지가지다.

 

내가 그런 시각으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에는 참 본데있는 사람들도 많고 본데없는 사람들도 많다.

어찌 보면 극과 극의 상태인데 달리 생각해보면 뭔가 하나만 살짝 건드리면 백 팔십 도 확 돌아서 본데있는 사람으로 하나가 될 것 같기도 한데......, 스스로가 그 중재자의 한 사람으로 밀알이 되어야 한다는 반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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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1. 잠언30.7-9(대전교구청 굿성경)7저는 당신께 두 가지를 간청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8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9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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