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인 기형 또는, 불의의 사고로 인한 외눈박이가 있을 수도 있다.
특이한경우이고, 극히 드문 예다.
보통 사람은 다 두눈박이다.
“눈이 하나면 왜 앞을 볼 수 없을까” 라는 신문 기사도 있었고, 충격으로 인하여 한 눈을 실명한 노정객이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박(朴) 의원님 이야기도 있었지만 외눈박이는 불행 그 자체다.
외눈박이이면서도 두눈박이의 몇 몫을 하여 사람들을 환호케 하는 인간승리 드라마도 있고, 두눈박이지만 외눈박이만도 못하여 사람들을 분노를 사게 하는 막장 드라마도 흔한 것이 이 세상인데 오늘 새벽에는 그 두 모습을 다 깨닫게 하는 일이 있었다.
작년 말 레지오를 다시 하면서 하기 시작한 새벽 자연보호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지난 초여름까지는 공원의 쓰레기 줍기를 했다.
이후로는 대상을 바꿨다.
새벽 쓰레기 줍기 작업이 과중하고 불편하여 잡초제거로 돌렸다.
봉사활동이라면 남들이 안 하고 싫어하는 것을 남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아직 수양이 덜 돼서 그런지 지저분하거나 냄새나는 그 것도, 잘 주으면 한 리어카는 됨직한 갈마 공원과 둔지미 공원의 쓰레기를 처치하기는 무리였다.
땀흘려가면서는 다른 일도 못 하는데 새벽 봉사활동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어차피 공공근로같은 통하여 어르신들이 무리를 이루시어 쓰레기 줍기를 하시는 것 같던데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은 죄송스러움도 있고 하여 새벽 쓰레기 줍는 것을 그만뒀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일거에 그만두기도 미안하여 다른 일을 찾은 것이 도로가나 공원 안에 나 있는 큰 풀을 전지 가위를 갖고 다니면서 싹둑싹둑 잘라내는 것이다.
제한된 구역이나마 한 참을 하다 보니 도로가의 지저분한 큰 풀이 정리가 되고, 쓸모없이 축 늘어진 공원의 작은 곁가지들도 정리가 되어 어지러운 모습이 사라졌다.
오늘도 묵주기도와 함께 그 작업을 하면서 향촌 블록과 갈마공원을 지나 둔지미 공원에 이르자 날이 훤하게 밝았다.
자동차가 오나 안 오나 힐끔힐끔 좌우를 쳐다보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데 듬성듬성 있는 큰 풀을 절단하면서 나가는데 인기척이 났다.
젊은 여자 아이들 둘이 갤러리아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인가를 하면서 오는데 보니 밤샘하고 나오는 불량 끼가 있다거나 새벽 일터로 나가는 건전한 이미지가 풍기는 것은 아니고 그저 그런 아이들 같았다.
나는 그 아이들과 마주치는 것이 멋 적을 것 같아 다시 허리를 굽혀 큰 풀 하나를 베내고 허리를 펴며 먼 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때 막 내 옆을 지나던 그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아저씨, 저기도 풀이 있네요.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아서 못 보셨나봐요”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기들 이야기를 하면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 소리를 들으니 멍 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산뜻하지도 않았다.
가볍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여운이 남았다.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간 아이들이 개구리한테 돌을 던지는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느라니 좌 클릭하거나 우 클릭하여 그게 다인양 무한 질주하는 외눈박이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에 자연보호 하는 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생각을 안 하고 있었지만 그럴지라도 잘 못 되거나 안 된 것을 꼬집어 낼 것이 아니라 지나치는 말로라도 수고한다고 한 마디 하면 어디가 덧나나 하는 서운함이 있었다.
자연보호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쏙 들어갔다.
이슬과 풀잎이 묻어있는 전지가위를 툭툭 털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만 오늘은 그만 하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나 아이들이 손가락질 한 곳을 보니 제법 큰 풀 한 포기가 지저분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철없는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는데 어른이 돼 갖고 고까워서 그냥 들어간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것이라는 생각 퍼뜩 들었다.
얼른 전지가위를 꺼내서 엎드려서 풀을 베내는데 이번에는 앞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들어 봤더니 다리가 불편한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서 내 앞으로 오시고 계셨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폈고, 아까 아이들이 지나갈 때처럼 먼 곳을 바라보면서 할머니가 지나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시더니 웃음 띤 얼굴로 “참 부지런도 하시오. 청소하시는 양반은 아닌 거 같은데 이렇게 동네를 위하여 이른 새벽부터 수고를 하시니 얼마나 좋으오? 복 받을 겁니다” 라고 하시는데 귀가 번쩍 뜨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자리에 그냥 있기가 민망하여 “예, 별 것도 아닌데요 뭘. 조심해서 다니세요” 하고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칭찬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칭찬을 받고 보니 아이들한테 서운했던 감정이 삭 사라졌다.
어떤 할머니인지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였는데 할머니는 세상을 밝게 하시고 밝게 보시는 두눈박이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양심을 지키고 권력에 항거하는 표시로 자기 눈을 송곳으로 외눈박이가 됐다는 조선 중기 화가인 최북 선생님을 본받지는 못할망정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넓게 봐야 할 청춘들이 외눈박이가 되어 겨우 안 잘라진 풀포기나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암울한 풍경이다.
사진에서 본 외눈박이 사랑 하트를 그린 소녀 그룹 가수의 청순한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에 다세포 소녀처럼 해맑은 두눈박이까지는 못 돼도 불편한 다리로 새벽을 여시면서 작은 일에도 감동하시면서 세상사는 아름다움을 기리는 두눈박이 할머니는 우리들의 등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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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