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타는 것인지 반백수한테도 백수 아닐 때만큼이나 일감이 솔찮이 밀려온다.
무슨 일감인지는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다.
이권관계가 없는 백수의 일감이라고 해 봐야 뻔하다.
그럭저럭 일감을 소화해내기는 하지만 안정성은 있을지 몰라도 생산성은 거의 없다.
돈 쓰고, 즐기고, 오라는 곳과 가야 하는 곳에 초대받는 일이다.
혹자는 그 나이에 그런 일감이나마 많다는 것만으로도 복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평소에 베풀고 했으니 그럴 기회가 있는 것이라며 부럽다고도 하지만 내세워 자랑할 것은 아닌 듯 하다.
상황이야 어떻게 됐든 간에 일감이 있으면 마다할 미당(美堂) 선생인지라 좀 분주하고 휴식을 취하던 내 속 안의 식솔들을 혹사시키는 측면도 있어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어제(2일)는 내가 안 해도 되는 집안 정리를 했다가 새벽 미사를 마치고 돌아온 내무상(內務相)으로부터 심한 핀잔을 받은 바 있다.
기분 나쁠 거야 없지만 핀잔하는데 같이 맞서면 시끄러울 것이 뻔 하니 반성하는 차원에서 묵묵부답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
내일 즐거운 서해안(西海岸) 기차나들이도 가야 하는데 냉전중이라면 그 묘미가 감소할 것이니 저녁때까지만 꾹 참고 있으면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란 말이 자연스럽게 증명되리라는 것을 과거 경험으로 알고 있는지라 노련하면서도 현명한 술수를 쓴 것이다.
지훈 조동탁 선생님의 수필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오색지로 태그한 것이 많은 것을 보니 역시 큰 어른의 글임을 알 수 있었다.
한적함을, 냉전기류를 깨부순 것은 점심 때 예상치 않았던 일감이 있음을 알리는 한 통의 전화였다.
이(李) 아우님이었다.
민(閔) 부회장님이 지족동 아파트로 이사를 하시고 신부님으로부터 축성을 받는데 꼭 참석해줬으면 하는 집주인의 부탁이었는데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즉답으로 오브코스(of course:물론)로 대환영이었다.
내일 하루도 “문화동 사람들” 여행길이어서 여러 가지로 만만치 않을 테지만 내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오늘은 오늘이었다.
그 일감을 잘 하고 저녁 늦게 들어왔다.
내일 바닷가 메뉴와 유사하게 겹치는 참치 집에서 통하는 사람들끼리 갖는 오붓한 시간이 좋아 피곤한지도 몰랐다.
물론 아침에 형성됐던 집안의 냉기류는 뜻밖의 일감 전화를 받고 오후 일정(2일)과 다음날(3일) 일행들이 함께 즐길 여행 준비물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확 풀어져 평상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또 일을 벌였다.
이 번 주 일감도 만만치 않고 다음 주도 제법 되는데 제비가 먹이 물어 오듯이 또 일감이 들어 왔다.
집 나간 며느리 애 배오고, 세포가 분열하는 것 같다.
다름이 아니라 월평동 참치 병장 집에서 일행을 통하여 다음 주로 예정된 일감 두 개를 추가로 받아온 것이다.
오너(owner:기업주)들의 일감 몰아주기도 아니고 이거는......,
하지만 좋다.
부담스런 면이 없지 않지만 기쁘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감들이다.
날이면 날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 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일감들은 무리 없이 즐겁고 부드럽게 잘 처리하여 후일을 도모해야겠다.
개천절(開天節)인 오늘에 자긍심을 갖고 일감이 밀려오는 단군의 자손인 배달의 기수임을 좁은 시야의 내 구역일지라도 만방이라 할 수 있는 그 곳에서 과시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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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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