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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물로 보이냐?

by Aphraates 2014. 11. 15.

공원 정자 옆을 지나다보니 여자 아이들 몇몇이 있었다.

풍기는 낌새가 이상했다.

“나 여기 없다”라고 하듯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표는 안 냈으나 발걸음을 늦춰 천천히 걸어가면서 눈여겨봤다.

초등학교 고학년 쯤 돼 보이는 아이가 저학년 쯤 돼 보이는 아이를 앞 의자에 앉혀 놓고는 훈육(訓育)을 하는 모습이었다.

큰 아이는 큰 표정이나 화를 보일 것도 없이 작은 아이를 내려다보며 “너, 내가 물로 보이냐?” 라고 하면서 뭔가 조근조근 따지고 있었고, 작은아이는 무슨 잘 못을 했는지 아무 대꾸도 없이 머리가 앞으로 쏠리도록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있었다.

옆에 앉아서 여차 하면 합세하여 응원이라도 할 듯이 앉아 있는 아이는 큰 아이의 친구인 것처럼 보였다.

 

불상사가 터져 도와줘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일진들이 동급생이나 하급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다.

싹아지 없거나 말 안 듣는 동네 아이를 응징하는 모습이었다.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 그냥 지나치는데 또다시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향해 “말 좀 해봐 너. 내가 물로 보이냐?” 하고 다그쳤다.

저만큼 가서 생각하니 재미있었다.

아이들 세계는 아이들 세계가 있는 것이어서 어른 들 눈으로 볼 때는 이상한 것도 통하고, 제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귀엽게 커도 밖에 나오면 험난한 일들이 있어 그를 잘 견뎌내야지 안 그랬다가는 병영 문화를 개선한다는 것이 자칫 잘 못 하면 엄마를 지휘관으로 내세워야 할 황당한 마마보이만 양산하는 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하는 연희동 어른 멘트와 “맞습니다. 여기 이 사람 물OO입니다” 라고 맞받아치던 시청자들의 멘트도 새롭게 떠올랐다.

장기간 병상에서 고생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세가 연세이시니만큼 빠른 쾌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물의 대를 이었지만 물의 정반대인 O이라는 소리를 듣던 상도동 어른도 퇴원하신지 얼마 안 돼 또다시 입원 가료중이시라는데 건강해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 얘기를 하다 보니 대동강 물 팔아먹던 봉이 김선달처럼 물 잘 팔아먹다가 물에 체해서 갑자기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물 회사가 연상됐고,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을 하자마자 대번에 물 수능(修能)이라는 소리가 나온 것이 흥미롭게 여겨졌다.

영어와 수학이 쉽게 출제되어 변별력이 없고 입시에 일대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전무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야기 같다.

교육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것처럼 시험도 그를 추종하여 어려워도 문제 쉬워도 문제라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정교한 작전과 세심한 전투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은 물이오, 산은 산이로다” 라고 하신 성철 스님의 법어가 아니더라도 좋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무서운 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 무시당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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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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