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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돌아가거나, 비켜가거나

by Aphraates 2014. 11. 18.

나는 험준한 고원과 고산지역을 여행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아마도 실현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는 맘에서 그런 것 같다.

사경을 헤맬 정도로 기진맥진하면서도 발걸음을 내디디거나 차를 모는 사람들과 주변에 펼쳐진 비경이나 직면한 최악의 상황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맘이 간절하지만 맘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파미르 고원이나 티베트 고원처럼 5~6천 미터의 산은 고사하고 우리 고향 동네 뒷동산인 561미터의 칠갑산(七甲山)만 오르려도 계획을 세우고 단단히 준비해야 하는 비산악인(非山嶽人)의 체질이기 때문이다.

보기는 안 그렇게 생겼는데 왜 그렇게 산을 못 타느냐며 꾸준히 등산 연습을 하면 된다고 부추기지만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듯이 못 오를 산은 화면이나 그림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도전도 안 해 보고 미리 겁먹고 포기하는 것은 내 과가 아니지만 못 타도 못 타도 너무 못 타는 산이기 때문에 욕심을 안 부리는데 산이 이성 간다는 말이 멋져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맘에 “저기 한 번 가볼까? 차타고 가는 길이라면 한 번 도전해봄 직도 한데 말이야” 라고 하면 데보라를 비롯하여 나의 한계를 아는 사람들은 산 문턱도 못 가서 두 손 번쩍 들 테니 아예 생각을 말라고 점잖은 충고를 겸한 경고를 한다.

 

카 트래킹(Car tracking)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끔 오갈 데 없는 외길에서 장애물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본다.

까마득한 절벽 위로 실낱처럼 보이게 난 고약한 1차선이 될까 말까한 비포장도로에서 바위가 굴러 떨어져 길을 막았다거나 홍수로 인하여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면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하나 난감할 따름이지 해결의 길은 뻔하다.

도로 복구 팀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궤도를 수정하고 방향 선회를 하여 다른 길로 돌아가던가 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장애물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 하는 데 세상을 원망하며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객기를 부려 바위를 들이 받거나 웅덩이에 텀벙 뛰어 드는 것은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는 아이들 은총잔치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좋은 결과가 아는 듯 해서 안타까웠다.

과거에는 성대하게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없어 다음부터는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겠다는 것이었는데 만시지탄이지만 인식했다는 자체가 다행이었다.

그런 결과는 이미 예측된 것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들 문제는 직접적으로 신경 써야 할 아이들이 없어 관심을 안 두고 멀어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안 봐도 그 상태가 어떠리라는 것은 얼마든지 추정이 가능하다.

 

잘 되게 하려면 민심(民心)과 동심(童心)으 흐름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적절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민심 동향이 확 달라졌다.

우리 관할 지역의 주변 여건은 20년 전과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20년 전은 신흥 아파트 주택단지로서 청장년 세대들이 모여드는 때였고, 지금은 청장년 세대들은 다른 신흥도시로 빠져 나가고 기존에 있던 청장년들이 노년이 되어 그대로 머무르거나 다른 노년 세대들이 들어오는 추세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활력이 넘칠 수가 없고, 아이들이 늘어날 수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어와 잘 나가던 그 때만 생각하고 왜 이렇게 안 되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면 그게 난센스다.

 

동심의 기준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공부와 입시에 매인 거야 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가뭄에 콩 나듯이 있는 아이들의 수준과 생각이 예전 같지 않다.

좋게 생각하면 앞 서 가는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되바라진 것인데 그런 것을 우리들이 돌려놓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이들의 신앙생활도 기본취지는 엄격하게 살리되 시대 흐름에 맞게 변모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재미있게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신앙에 맛을 들이게 이끌어야지 옛날 방식의 주입식이나 강압적인 방법으로는 먹히질 않는다.

다양한 피자 맛에 길들여진 아이들한테 시루떡을 주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니 많이 먹으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떡일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두 말할 거 없이 외면해 버리고 말 것이다.

 

카 트래킹에서 길이 막히면 돌아가거나 비켜가야 하는 것은 은총잔치를 비롯한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목표점이 다다르기 위하여 정도를 가는 것이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간다는 무모한 우격다짐이 아닌 이상 다른 길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 길이 아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공부가 다는 아니다, 제발 좀 깨어들 있으라, 본분을 지켜라......, 라고 소리질러봐야 실체적 진실과 실질적인 행동 없는 여건이라며 허공의 메아리밖에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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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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