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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김새다

by Aphraates 2014. 11. 22.

데보라가 나가면서 밥 앉혀 놨으니 김새는 소리 나고 몇 분 있다가 밥이 완료됐다고 하면 뚜껑을 열고 밥을 저으라고 했다.

알았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라고 일렀다.

나가려다가 아무래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 저어 놓으면 죽이 되어 밥이 맛이 없어 혼자 먹으려면 더 안 먹힐 거라며 틀림없이 제 시간에 주걱으로 저어주라고 했다.

나도 다시 한 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옷이나 춥지 않게 입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꼭두 새벽부터 부부지간에 걱정을 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데는 서로 잘 알지만 해결되지 않는 해묵은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매번 신신당부해도 잘 안 되는 것이 그런 작은 문제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곰국 한 솥 끓여 놓고 먹든지 말든지 하라고 내팽개치는 악녀(惡女)나 나가더라도 때가 되면 들어와서 밥 챙기라고 어깃장 부리는 악동(惡童)이 아니라 그저 선남선녀(善男善女)이다.

여자가 외출을 하면서 혼자 밥 먹을 남자가 걱정이 돼 꼼끔하게 이른다.

냉장고 어디에 뭐가 있고, 집안 어디에 뭐가 있으니 잊지 말고 꼭 챙겨서 잘 먹으라고 아이들 가르치듯이 한다.

하지만 잔소리를 듣는 남자는 겉으로는 알았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알기는 뭘 알아. 손에 잡히는 대로 그럭저럭 한 끼니 때우면 되는 걸 갖고 웬 잔소리가 그리도 심한 것인지 성가시럽게 굴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관심과 무관심의 결과는 바로 나타나 드러난다.

여자가 나갈 때 어찌 어찌 챙겨서 먹으라고 했는데 건성건성 듣던 남자가 여자가 말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 무슨 보물단지 숨겨 놓은 것처럼 찾지를 못 하여 냉장고 맨 앞에 있는 김치 하나 놓고 밥을 먹고, 여자가 돌아와서 보니 말한 것은 하나도 안 이루어져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찾으려도 영 없더라 며 귀찮아서 그냥 있는 거 놓고 먹었다고 한다.

여자 입장에선 그렇게 단단히 얘기하고 갔는데 엉뚱한 소리를 하면 김이 팍 새는 느낌이다.

한심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여 남자 손을 이끌고 주방 싱크대며 냉장고를 돌며 이거는 여기 있고, 그거는 저기 있다고 했는데 그 것도 못 찾았느냐며 언성을 높이면 속없는 남자는 아까 찾을 때는 없었는데 그게 언제 거기 들어가 있지 하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게 아귀가 안 맞아도 걱정할 것은 조금도 없다.

김새는 그런 이야기는 똘똘한 여자에 칠칠맞지 못 한 남자의 흠잡힐 걱정스런 관계가 아니라 원래부터 여자는 그렇고 남자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이다.

 

싸움을 해도 칼로 물 베기인 부부지간은 그렇게 덜그렁거려도 정작 덜그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복원될 수 있으므로 큰 문제가 아니다.

몸보신하라고 찐한 보양식을 맛있게 잘 끓여 찬장에 넣어놓고 몇 번이나 거기 뒀다고 강조했는데도 그를 찾지 못 하고 정수기 찬물을 빼서 물 말아 먹는 식으로 손에 쥐어 줘도 못 한다 해도 나중에 여자가 챙겨서 함께 먹으면 도기 때문에 김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랬다가는 파탄을 일으킬 수 있는 김이 팍 새는 큰 문제다.

이쪽에서 진심으로 정성을 다 하여 일렀는데 저쪽에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여 일을 크게 그르쳐 놓고는 그냥 지나친다거나 서운한 소리를 하면 김새는 것을 넘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사고다.

오죽하면 그랬을 까 하고 넘어가려 해도 그 서운함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다른 일도 되질 않는 것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아니라 눈을 뜨나 감으나 분노의 화신이 눈앞에서 어른 거려 사람을 악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전에 있었던 김새는 일의 연장선상이다.

잊자 잊자 다짐하지만 그리 쉽게 잊힐 일이 아니다.

김새는 일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오늘 새벽은 전기밥솥 김새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남편이 밥을 먹는 거야 차후 문제이고, 새벽 잠 제대로 못 자고 나가는 아내가 나중에 돌아와서 봤을 때 밥을 안 저어 떡이나 죽으로 만들어 놨으면 말 안 듣는 남편한테 서운하고 짜증이 나 지청구를 할지도 모르니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글 쓰는 것을 멈추고 밥을 저어야겠다.

 

매사에 완벽을 기하기는 어렵지만 가능한 한 김새는 일은 없이 해야 한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十年工夫 徒勞阿彌陀佛) 식으로 무슨 목적을 갖고 공을 들인 것이 아니고 일상 자체가 정성으로서 진국인데 그를 모르고 섣부르게 함부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김새게 만든다면 하나에서 열까지는 몰라도 여덟에서 아홉까지는 실패한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조금만 신경 쓰면 안 그럴 수 있을 텐데 살아가면서 그렇게 김새게 하여 손해 보는 짓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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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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