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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애기 엄마, 양말 좀 신으시지

by Aphraates 2014. 12. 5.

청출회(靑出會) 아우님들과 만나는 날이다.

다들 현직에 있고 나만 예비군 아니, 민방위대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한 턱 내기로 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청양 사택에서 살 때 집들이다, 백일이다, 돌이다, 생일이다, 축하식이다 하면서 1주일이 멀다하고 전 가족들이 모여 질펀하게 잔치를 벌이던 기억도 살려볼 겸 해서 사라진 문화를 되살려보고 싶어서 우리가 만든 자리다.

데보라가 한참 전부터 이것저것 골고루 준비를 했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만드는 정성이 더 중요하다면서 공을 들여 준비를 했는데 좋은 자리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집안 정리는 몇 시간에 걸쳐서 내가 곳곳을 들춰내고, 쓸고, 밀고, 닦고 하면서 반들반들하게 해 놨다.

오전 내내 청소를 하고 난 다음에는 내 소관사항인 술은 뭐로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봤다.

안주가 한우 소꼬리 전골을 주 메뉴로 하여 푸짐하니 술도 그에 걸맞게 걸쭉해야 할 텐데 취향들이 있어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양주, 담근 술, 와인, 중국 술, 막걸리, 소주, 맥주, 음료수와 맹물, 과일 주스 등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봤다.

무엇을 한다 해도 부담 없이 준비하거나 있는 것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최종적으로는 평상시 스타일인 소맥(燒麥) 폭탄으로 정하고는 냉장고와 뒤 베란다에 있는 것들을 긁어 모아봤다.

집에서는 여간해서 술을 안 마시기 때문에 어쩌다가 생긴 술을 그대로 방치한 것인데 전체를 앞 베란다에 모아 놓고 헤아려보니 소주 2홉 짜리 네 병에 캔 맥주 열 개가 있었다.

그 걸로는 양이 안 찰 거 같았다.

참가하는 멤버가 나를 포함하여 일곱 명인데 술을 한 방울도 못 하는 윤(尹) 아우님과 흉내만 내는 주(朱) 아우님을 감안하더라도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아서 더 준비하기로 했다.

내년 담뱃값 인상에 대비하여 사재기를 하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자동차나 자동차 서랍이나에 담배가 그득해야 맘이 푸근한 것이 애연가이듯이 술을 많이 마시든 안마시던 넉넉하게 비축돼 있어야 맘이 뿌듯한 것이 애주가가 아닌 주당들의 심정이다.

 

날씨가 차가운 거 같아서 두툼하게 입고 나갔다.

중앙 통로를 지나가는데 젊은 애기 엄마들 몇몇이 팔짱을 끼고 발을 흔들어가면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마도 유치원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이 희한했다.

다른 데서도 종종 보는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웃음이 나왔다.

머리 손질을 안 했는지 겨울 모자를 썼다.

두터운 외투를 걸쳤는데 앞을 안 채워 속의 엷은 셔츠가 보였다.

아래는 내복 비슷한 쫄 바지를 입었다.

거기까진 그런 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허옇게 드러난 맨발과 보기에도 차가운 실내화스타일의 신이었다.

 

정확하게 도착 시간을 지키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인데다가 격식을 가릴 옷차림이 아니어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춥다고 그렇게 오들오들 떨면서 손을 비빌 것 같으면 외투 앞이라도 잠그고 양말이라도 신고 나올 것이지 무슨 그 야릇한 행색인지......, 누구 얘기를 들으니 요즈음 청춘들이 대부분 그런 식이라고는 하더만서도 모양새가 갓 쓰고 구두 신은 것처럼 영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어서 웃음이 나왔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발을 쳐다보자 웃으면서 발을 움직이며 감추는 시늉을 했다.

그냥 지나치면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개성을 흉보는 것이 될 거 같아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가볍게 웃으면서 “애기 엄마, 양말 좀 신으시지. 안 춰요? 닭이나 오리가 맨발로 다닌다고 해서 여름인 줄 알고 따라하면 곤란해요” 라고 했다.

그러자 한 애기 엄마는 까지러지게 웃었고, 다른 엄마는 옷 매무새를 충그리면서 이렇게 하고 다녀도 견딜 만 하다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가볍게 목례를 했다.

 

지난 번 레지오 하러 가서 보니 노장년(老壯年)층들은 고풀이 들려 미라처럼 중무장하고서도 콜록거리며 골골하시던데 한 겨울에 맨발의 청춘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으니 떠오르는 태양과 기우는 해의 차이는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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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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