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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맘마의 진이국과 인절미

by Aphraates 2014. 12. 22.

미당(美堂) 장터의 우시장(牛市場) 입구 국밥과 떡과 막걸리를 파는 좌판에서 따뜻한 진이국에 구수한 콩가루 냄새가 나는 보드라운 인절미를 먹는 맛이라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장날에 학교가 파하거나 점심시간에 나와 그 주막(酒幕)에 가서 포목전을 하시는 아버지 이름을 대면 아주머니께서는 맡겨 놓은 물건 내 주듯이 때에 맞춰 국밥이나 떡을 주셨다.

점심시간 전이면 국밥을 주셨고, 점심시간 후면 인절미를 주셨다.

국밥은 투가리에다가 밥을 반 쯤 넣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국물을 몇 번인가 갈아 부은 다음에 그 위에 벌겋게 만든 돼지고기나 닭고기의 다진 양념을 국자로 푹 퍼서 얹어 주셨는데 먹고 나면 한 그릇 더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인절미는 한 접시에 깔린 한 열 개 정도 되는 것이었고, 진이국은 김치나 시래기에 손가락만한 멸치가 장화신고 지나갔다고 했을 정도로 맛을 내는 멀건한 것이었는데 아껴서 천천히 먹는다고 하는데도 먹다보면 금방 다 먹어버려 속으로 “기왕 주시는 거 더 많이 좀 주시지” 하는 아쉬움으로 표 안 나게 입맛을 쩍쩍 다시며 일어서곤 했다.

 

어제는 점심은 갈마동 아우님 댁에서 어죽으로, 저녁은 만년동 형수님 댁에서 생선회로 했다.

어죽과 생선회도 인상적이었지만 그와 함께 진이국과 인절미도 그리웠다.

괴정동 결혼식장에서 지인들한테 우리는 다른 곳에 갈 일이 있어서 함께 식사하지 못 하고 간다고 인사했더니만 이(李) 형께서 그래도 맘마는 드시고 가셔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시어 다들 함께 웃었다.

차에 타고 출발하면서는 다른 일정이 아니더라도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좋아하지 않는 뷔페식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부부가 의기투합하기도 했는데 어느 잔치 집을 가나 보편화된 뷔페를 터부시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먼저 점심의 진이국 이야기다.

 

갈마동에 갔더니 도심지 한 복판에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검은 커다란 가마솥을 걸어 놓고 폐목으로 불을 때가면서 서(徐) 안나 자매님의 지도하에 아우님들이 어죽을 끓이고 있었다.

일은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면서 다들 집안으로 들어가시라는 주방장의 지시에 따라 열 명이 넘는 단원들이 거실로 들어와 역시 주방에서 일하시는 주인댁 김(金) 도미니카 자매님께 우리들은 입만 갖고 왔다고 인사를 하고는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한 참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가요. 문 열고 조심하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어죽 양푼을 들은 형제님들이 들어오셨다.

기다리고 있던 자매님들께서 그 어죽을 큰 우동 그릇에 가득 퍼서 돌렸다.

한데 아뿔싸였다.

김은 모락모락 나고 냄새는 구수한데 내 취향이 아니었다.

숟가락이 가질 않았다.

상상하던 어죽과는 다른 어죽이 끓여진 것이다.

쌀도 적게 들어 간 것 같고, 국수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고추도 안 넣은 것 같은 것이 허옇고, 멀겋고, 얼큰한 맛이 없었다.

주방장에 따라 음식 모양과 맛도 달라지는 것이다.

나만 입맛이 까닥스러운 것인지 다들 별 말들 없이 땀을 흘려가면서 맛있게들 드시어 안 먹는다는 표를 안 내려고 신경을 썼다.

몇 숟가락 뜨다가 슬쩍 옆으로 밀어 놓고는 평소에는 입에도 안 대는 호박죽을 갓김치를 얹어 한 보시기 먹는 것으로 어죽을 대신했다.

 

다음은 저녁의 인절미 이야기다.

 

다시 눈 펄펄 내리는데 중리동 형님 내외께서 오정동 농수산 시장에서 생선회를 떠 갖고 오셨다.

4kg인데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셨지만 다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시면서 상에 펼치놓고서는 맛있게들 드셨다.

식수(食數) 인원이 열 명이니 두 접시를 금방 해치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선회가 처음에는 좀 주는 거 같더니 조금 후부턴 표 나게 줄질 않았다.

형수님이 준비하신 모시 떡과 무지개 떡, 부침개, 각종 겨울 김치를 맛보느라고 본 메뉴인 생선회가 안 팔리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착각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인절미만 하게 썬 생선회가 질려서들 그러셨다.

첫 젓가락을 댔을 때는 두툼한 것이 생선회 먹는 기분 나는 것 같더니 좀 지나니까 너무 크고 물컹거려 입맛이 떨어진 것이었다.

생선회 마니아인 데보라조차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생선 가게 아줌마는 연말에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회 뜨는 것을 지켜서 본 중리동 형님은 큼직하게 썰으라고 부탁한 것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평소 하던 대로 먹기 좋게 얄팍하게 썬 것이 아니라 인절미만 하게 푸짐하게 썬 것인데 결국은 다 먹지 못 했을 뿐 아니라 그에 질려서 매운탕의 어두일미(魚頭一味)의 식탐도 포기해야 하는 굴욕을 당한 것이다.

 

점심이나 저녁이나 음식 작전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더 감칠맛 나게 한다는 의욕이 좀 일그러졌을 따름이다.

아무래 괜찮다.

맘마에 관한 그 정성과 맘만으로도 아주 훌륭하고, 진이국과 인절미를 회상케 한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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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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