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둔산(屯山)에 왔는데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잘 됐다 싶었다.
자주 만나는 친구이지만 올 해는 처음이다.
신년하례도 하고, 매년 방학을 이용하여 시행되고 있는 것이 십 여 차례 이상 계속되고 있는 중국 초청 중고등 교장단 연수를 며칠 후에 떠난다고 했는데 장도(壯途) 축하도 함 겸 해서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딱이었다.
전혀 그럴 사이가 아니지만 우스운 시쳇말로 하면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고, 도둑O이 제 발로 경찰서에 기어 들어온 격이었다.
걸어서도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택시를 탔다.
날씨가 차가운데 친구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점심시간이어서 그 근처로 친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공직자들이 많이 오갈 텐데 길가에서 기다리는 친구가 그들과 마주치면 멋쩍어 할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려고 그랬다.
한데 그 것은 오판이었다.
친구가 기다리지 않도록 빨리 가야 하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거리에서 서서 입김을 내뿜으며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가는 도중에 어디쯤 오느냐고 묻는 전화가 왔기에 택시를 타고 가고 있다고 했더니 치과대학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이서 그런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아가씨들은 벌써 점심 식사를 마쳤는지 한 손에는 브랜드 커피 잔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손가방을 들고 느긋하게 걸어가는데 뭣이 그리 좋은지 연시 생긍생글 웃는 표정이었고, 어떤 남자들은 춥지도 않은가 넥타이 와이셔츠 차림에 바쁘다는 듯이 뛰는 것처럼 씩씩거려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병원 1층 유리문을 통해 밖을 보던 친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왔다.
날씨도 추운데 어디 들어가서 얘기하자며 좋은 집 있으면 가자고 했다.
멀리 갈 거 없이 전에 가던 일식집이 저기인데 가서 탕이나 한 그릇 하자며 바로 코앞의 지하 입구에 붙어 있는 식당 간판을 가르쳤더니 그거 좋다며 흔쾌히 응했다.
전에도 가끔 와서 점심식사를 하던 깨끗하고 맛있는 집인데 와 본지 한 참 돼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고 설명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데 썰렁했다.
구조 변경이나 페인트칠은 언제 했는지 색이 바라 있고 언뜻 보기에도 활력이 없어 보여 잘 못 들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되돌아 나올 수도 없고 하여 지하 골목 모퉁이를 돌아 식당 문을 들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방은 물론이고 홀 테이블까지 손님들이 꽉 차 있었고, 빤히 보이는 주방과 홀에서는 요리사와 서빙 하는 사람들이 크지는 않지만 또박또박할 말로 안내를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밖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얼핏 어느 인사의 북한 방문기가 생각났다.
황석영 작가이던가 임수경 의원의 회고록이었던 것 같다.
대대적인 환영식을 한다며 수행원들과 함께 무슨 대운동장으로 이동하는데 거리는 썰렁한데다가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이는 것이 무슨 환영식을 한다는 것인지 시큰둥했단다.
별 기대도 안 하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가 그라운드와 스탠드를 가득 메운 수많은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빨간 스카프를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을 하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밖과는 전혀 딴 판이어서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하는 생각에 놀랍기도 하고 이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컸었단다.
친구와 들어간 지하 일식집도 꼭 그 모양새였다.
우리가 어리둥절하여 멈칫거리니까 홀 서빙을 하던 제복 차림의 중년의 여 종업원이 예약을 하셨느냐고 물었다.
겨면 쩍에 웃으면서 안 했다고 하자 그럼 자리가 없다면서 자기 일을 하려는데 주방장인지 요리사 모자를 쓴 사람이 주방에서 내 놓으면서 종업원한테 이리로 모시라고 하면서 주방 앞 스탠드 형 좌석을 가리켰다.
주방과 홀의 호흡이 잘 맞았다.
음식을 조리하고 서빙을 하는 것이 능수능란하고 재빨랐다.
방과 홀에 가득한 손님들한테 적절한 서빙을 하면서도 우리한테도 바로 코스대로 간이 일식과 생선 매운탕을 내왔다.
음식도 간소하면서도 담백하고 맛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직도 현직에 있는 친구와 은퇴한 내가 이러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신앙생활 이야기와 가정사를 이야기 하다 보니 통하는 바가 컸고, 서로 도움도 많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간단한 점심 식사 한 끼 하는 것인지라 가까이 있기에 다른 곳을 찾을 것도 없이 들어 온 음침한 지하 식당이지만 식당으로 가출 것 즉, 청결한 환경과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 신속 정확하며 친절한 서비스, 친구가 계산해서 잘은 모르지만 비싸지 않았을 적절한 가격의 삼박자(三拍子)가 맞아 떨어지는 것이 썩 괜찮은 식당이라는 인식이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으니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바로 앞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께서 싱글벙글하면서 우리한테 뭣 좀 더 드시겠느냐고 물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사양했다.
주석(酒席)도 아니고 오래 지체할 것이 아니어서 잘 먹었다고 인사하면서 나가려고 일어나 돌아섰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방과 홀에 바글바글하던 손님들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우리들이 방과 홀을 등지고 우리들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인근의 시청과 교육청을 비롯한 관가와 오피빌딩의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시간이 되자 쭉 빠져 나간 것이었다.
친구가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나는 입가심으로 먹으라고 통에 담겨있는 사탕을 꺼내 까서 친구에게 주고 나도 하나 먹으면서 종업한테 아까는 정신없으시더니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라면서 꼭 밀물과 썰물 같다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였고, 친구가 항상 그렇게 바쁘시면 어려우시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버시겠다고 하자 식사시간 잠깐에만 그렇다고 하였다.
식당도 잘 되는 집은 잘 되지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소리를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경기 흐름 체감도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다.
업(業)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그럴 것이다.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큰소리치며 잘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하는 쪽쪽 마다 파리만 날리는 거야” 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늘 긴장감 속에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정성을 다 한다 해도 그 결과가 천양지차인지라 살얼음판 걷는 기분은 잘 되는 사람이나 잘 안 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도 잘 돌고, 장사도 잘 됐으면 좋겠다.
친구와 헤어져 슬슬 걸어오는데 퇴직자 교육을 받을 때 창업 전문가가 언급하던 테이블 회전율이 떠올랐다.
하루종인 손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위주로 하는 식당이든 술을 위주로 하는 식당이든 일시적으로 밀려오는 업종은 앉을 자리가 없어 손님을 못 받는 일이 없이 테이블 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계절을 타는 업종도 비슷한 논리라고 했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그 식당은 테이블 회전율을 상당히 높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밀려오는 시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면 당장 그 때의 매상 부진도 문제이지만 부적절한 대접을 받은 손님이 다시 거기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밀물과 썰물에 대처를 잘 해야 많은 이득이 날 거 같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 했고, 물들어 올 때 배질 하라고 했다.
전문가나 실전가가 아닐지라도 손님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시간에 이르면 신속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시간이 지나면 만족해 한 손님이 빠르게 나갈 수 있게 하는 테이블 회전율 제고는 영업의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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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