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구랍 말일 전일(甲午年 舊臘 末日 前日) 이야기다.
강원도 내륙 광산촌에 있다가 경상도 해안가로 옮겨 가 산다는 친구 장(張)이 설을 쇠러 왔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늦으막한 나이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권장할 것은 아니다.
심신의 안정을 취하며 유연한 생활을 해야 할 때에 객지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개념으로 고난을 견디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럭저럭 객지생활을 해내는 친구가 대견스럽다.
이것저것 다 내려놓은 처지에서 뭐 하나 도와주지도 못 해 미안도 하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쩌다가 통화를 하면 어디냐고 물어보고 만날 수 있으면 만나서 소주나 한 잔 하자는 것 정도다.
그런 관계도 유지하기 힘든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지만 이 나이에 가족과 가정을 떠나 뭔가를 한다는 것은 원대(遠大)한 것이라기보다는 원대(怨懟)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레지오를 마치고 단원들과 설 잘 세라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친구한테 둔산여고 사거리로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잠시 후에 만나서 한 팀을 이루어 S식당으로 갔다.
일행은 지(池)와 김(金) 형제님과 합이 넷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노련해 보이는 나이든 여자 종업원과 아르바이트생 같은 여자 종업원들 몇몇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는 몇 분이나고 물어보고는 대답도 들을 새도 없이 몇 명인지 대충 알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주방 쪽으로 안내했다.
빈 테이블에 착석을 했다.
공간이 협소하여 입고 간 외투와 레지오 가방은 각자 의자 뒤에 놓았다.
메뉴판을 들고 주문을 받으러 온 여 종업원한테 먼저 소맥(燒麥)을 가져오라 하고는 여기서는 뭘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연탄불 구이가 오리지널 메뉴라고 하여 그 것을 시켰다.
주문하자 얼마 안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나왔다.
손발이 주인과 주방과 홀의 손발 척척 맞아 돌아가는 것 같았다.
종업원이 대패 삼겹살에 고추장 양념 소스를 끼얹은 것을 불판에 얹으면서 시간을 두고 느릿하게 익어야 맛있다고 했다.
기다림의 미덕은 안 통한다.
그 말을 순순히 따를 수가 없었다.
우선 빈속에 한 잔 쫙 하자하고는 밑반찬으로 나온 미역국과 김치를 곁들여 첫잔을 부딪쳤다.
그 때부터 좌우 협공(挾攻)이 시작됐다.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군과 적군의 포진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테이블은 서로 마주 보고 둘 씩 앉는 4인상이었다.
나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 앞의 벽 쪽으로는 아군 둘이 자리했다.
뒤 쪽은 아군도 적군도 아닌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음식 주문과 배식하는 소리가 요란한 주방이다.
좌우측은 적군이다.
좌측은 20대 중후반이나 됐음직 한 여자 둘이서 주먹구이와 밥을 안주로 하여 소주잔을 나누는데 소곤소곤 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화통한 편이었다.
국그릇보다 조금 큰 노란 양은그릇에 못 보던 음식이 있어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밥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 김치볶음탕인가 뭔가 라고 하면서 좀 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호의는 고맙지만 사양했다.
우리 안주도 바로 익을 텐데 새로운 안주 같아서 한 번 물어본 것이니 신경 쓰지 말고 어여들 드시라고 했다.
아가씨들끼리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남도 배려하면서 자기들 시간을 갖는 모습은 그런 대로 봐줄만 했다.
문제는 우측 적군이었다.
2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아가씨들 넷이었다.
우리 보다 좀 늦게 들어와 덩어리 고기를 시켜 놓고 소주잔을 연시 주고받는가 싶더니 금세 시끌벅적했다.
동계 올림픽에서 바닥을 문지르며 쇳덩어리인지 돌덩어리인지를 과녁에 넣는 컬링인가 뭔가 하며 소리 지르는 여자 선수들 같았다.
넷이서 함께 어찌나 귀가 따갑도록 떠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차림새도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선수들과 엇비슷한 노랗고 빨간 원색 캐주얼이었다.
자기들만의 몰입상태였다.
정신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옆에 노땅들이 앉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 안 쓰는 것인지 내가 그 아이들 테이블에서 수저와 휴지를 몇 차례 가져와도 눈길을 준다거나 몸을 조금 움츠린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다.
잠시 후에는 점잖게 마시던 좌측 아가씨들도 따발총을 쏴댔다.
취기가 도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앞에 앉은 아군인 친구도 몇 잔 들어가자 대포를 쏴댔다.
레퍼토리는 귀에 박히고도 남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광산촌의 무용담이다.
혼자 그렇게 앞뒤가 안 맞는 영양가 없는 얘기를 되풀이 하면 함께 한 사람들 피곤하니 그러지 말라고 그동안 충고를 수도 없이 했건만 오늘도 내내 마찬가지였다.
개과천선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다들 싫어하는 친구의 독무대는 이제 그만 둘 때도 됐건만 여전하니 아직도 뭔가는 속이 허전한 것 같다.
나도 소맥 폭탄 몇 개 터트리니 협공에 감이 무디어졌다.
그러나 전후좌우(前後左右)에서 협공을 해오는데 제아무리 강한 장수이거나 제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군자라도 버티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전후좌우를 각개격파(各個擊破)로 쳐부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리하는 것이 용장(勇將), 지장(智將), 덕장(德將)으로서의 상책이었다.
술과 안주가 딱 맞아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자리를 마무리했다.
내일 다들 고향을 가던지 차례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오늘은 그만 하고 일어나자고 하였더니 그래도 입가심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붙잡는 탁각이나, 주책이나, 무례한은 없었다.
일어서면서 요란스럽기로는 압권인 우측 아가씨들한테 “먼저 일어납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 라고 하였더니 한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하여 웃었다.
밖으로 나오니 사면초가의 사지에서 탈출한 기분이었다.
귀가 따가울 정도이든 협공에서 탈출하여 옷깃을 여미노라니 늦은 시간이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 소리가 오히려 교향곡처럼 들렸다.
에이, 시끄럽기도 하던 아이들이었다.
멋모르고 협곡으로 들어가서 협공을 당한 것은 우리 전사들의 불찰이었지만 그런 때니 돼야 한 번 경험해보는 청춘무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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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