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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누나가 시집갈 때

by Aphraates 2018. 11. 6.

친척이나 동네 누나가 시집갈 때는 울적했다.
훼방 놓느라고 돌이라도 던지고 싶었다.
어른들께서 혼사 준비를 할 때는 덩달아 즐거웠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평소 못 느끼던 이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늘 함께 하면서 동생만 아껴주는 것 같더니 멀리 멀리 떠나가는 누나들이 싫었고, 맘에도 없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 같은 누나들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었다.
손아래 처남이나 동네의 이웃 동생이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전 못 보던 먹을 것과 선물 같은 것을 주면서 관심을 가져주던 인왕산 호랑이보다도 크고 금방 주먹을 날릴 것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나이 든 남자가 연약한 누나를 강제로 데려간다는 것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야만인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아무리 잘 해 줘도 누나를 훔쳐가는 도둑들은 다시 보고 싶지가 않았다.


세월이 지나서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사람을 되어 들어오는 형수님이나 제수씨는 좋아도 내 사람을 데려가는 매형이나 매제는 싫어하는 이율배반적이면서도 인지상정인 인간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누이에 대한 사랑이자 남자로서의 시기와 질투심 같은 것이었는데 어렸을 적이나 나이 들어서나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집안에 푸짐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 좋긴 하나 산적처럼 기분 나쁘게 생긴 남자가 여린 누이를 데려가는 것은 납치나 다름없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시집가는 누이를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 것 같다.
시류에 따라 현대화되는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남매를 둔 가정에 외아들이나 외동딸이 대부분이다.
누이가 결혼을 해서 집을 나가면 사촌도, 고모도, 외사촌도, 이모도 없는 외톨이가 된다.
결국은 본인도 나이가 들어 짝을 찾아 나서는 외로운 행군이 시작되면서 떠나간 누이가 더욱더 애초럽게 느껴질 것 같다.


불행 중 다행도 있다.
매형이든 매제든 예전처럼 아저씨 같지가 않다.
신식 신랑들은 나이 들고 원숙한 각시 치맛자락 붙잡고 다니는 꼬마 신랑을 연상케 한다.
가늘고 약해 보인다.
나이들만큼 들고, 어지간하면 군대도 다녀왔을 텐데 야리야리한 것이 중후하고 건장한 모습은 잘 안 보인다.
세대 차이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랑들이 몸을 만드느라 다이어트를 한 것처럼 날씬해 보인다.
가냘픈 신부가 육중한 신랑한테 데려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신랑이 두툼한 신부한테 업혀가는 장면이 늘어나는 것이다.


사내가 묵직해 보여야지 저렇게 날아가는 콩새나 흔들리는 마른 가지처럼 빈약해보여서야 원......, 라고 혀를 차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무릇 백년가약의 사이라면 나이 차이도 어느 정도 나고, 외모 차이도 확연하게 구별이 되어 사내대장부와 현모양처의 분위기가 풍겨야 제 격인데 이거는 어느 쪽이 남자이고 어느 쪽이 여자인 줄 모를 정도로 가냘 퍼서야 험한 세상 어찌 헤처나갈지 걱정스런 것이다.
콩새가 똘똘하고 마른 가지가 화력이 좋다는 말도 있지만 눈앞에 우선 당장 보이는 것이 빈약하니 맘이 흡족하질 못한 것이다.
첨단고도산업사회에서 구닥다리 인식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나 그게 그렇게 잘 못 된 것은 아닌 듯싶다.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함부로 말할 것이 아니다.
장모가 사위한테 사내답지 않게 생겼다고 한 지나치는 말 한 마디가 평생 발목 잡히는 것이 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왜 그렇게 못 생겼느냐고 간단하게 한 말 한 마디가 평생 고부갈등의 단초가 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옷걸이를 따지기로 말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미당 선생이지만 남들은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결혼하기 전부터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 경향이 보이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인생살이에 성패에 시달리다보면 가냘프던 여자가 펑퍼짐해지고, 우람하던 남자가 말라깽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긴 하겠으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런다면 스트레스 좀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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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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