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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개문식사

by Aphraates 2021. 1. 6.

개문발차.

도시가 급팽창하여 걷잡을 수 없이 인구가 늘어나는데 지하철 등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아 버스가 주요 교통수단이던 서울 등 대도시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다.

버스를 타야 할 사람은 많았다.

반면 도로가 좁고 버스 편이 적어 출퇴근 시간은 말 그대로 교통지옥이었다.

버스는 콩나물 시루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빡빡하게 사람을 실어 탑승 도우미가 밀어도 문이 안 닫혀 문을 연 채로 안내양을 매달고 출발하여 운행하는 식이었다.

좁은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밀집해 있는 현실에서 지금도 교통이 원활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도로와 지하철 등 기반 시설 확충으로 개문발차하던 시절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다.

 

1970년대 개문발차

개문발차는 그런 것인데 개문식사는 또 뭔가.

처음 들어보는 소리이지만 그런 게 있다.

낯선 사자성어는 아니다.

미당 선생이 코로나와 전쟁을 하면서 체험학상으로 급조한 신조어다.

 

먹는 것 갖고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고 했지만 본의 아니게 그리됐다.

식탁도 빈부와 신구 차이는 있다.

 

부자 식탁은 풍요롭다.

진수성찬이라서가 아니라 분위기부터 다르다.

문을 닫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정겹게 식사를 한다.

지금은 식탁 그림이 많이 변했다.

가족이 다 모이기도 힘들고, 분위기도 산만하다.

총알 배송하듯이 전광석화로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우물쭈물했다가는 김이 모락모락 나던 따스한 밥은 찬밥이 되거나 식탁을 치워야 한다.

빈자 식탁은 반대다.

시간 없으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밥사발 앞에서부터 빨리 떠먹어야지 밥 먹으면서 말을 한다거나 뒤에서부터 퍼먹으면 복 달아난다고 혼난다.

어쩌면 수십 년 후에 일어날 코로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것 같다.

가족일지라도 걔들한테는 남들이니 비말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행동지침이니 먹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한 것이다.

 

계산식과 경우의 수가 복잡하다.

그냥 넘어갈 때는 넘어가야 한다.

너무 철두철미하면 삭막하고 재미없다.

식사 한 끼니 하는데 몇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고기 한 점 입에 넣으면 수십 번씩 씹으며 대화를 나누는 서양식 식습관이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하다 보니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우리는 뭘 먹는다고 광고하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식사를 하게 됐다.

 

평생 식탁이 왜 그래야 하나.

이유가 있다.

주범은 여기서도 온리 코로나(Only Corona).

 

발전소 구내식당에서의 점심은 개문식사(開門食事).

한겨울에 무슨 시위를 하거나 열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코로나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환기를 시키는 것이다.

 

그도 일상을 벗어난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

두 다리를 덜덜 떨면서 식사를 하니 아무리 뜨거운 것을 줘도 썰렁하다.

지금부터 식사 시간 5! 식사 개시! 식사 끝!!!” 하던 구닥다리 논산 훈련소 식당도 아닌 것이 누가 말 안 해도 아크릴 칸막이마다 붙여 놓은 식사 중 대화 금지라는 팻말에 따라 후다닥 먹어 치우고 두말할 것 없이 내빼는 것이 대부분이다.

 

적자생존이다.

일상을 벗어난 환경에 잘 버티는 사람들은 별문제 없지만 안 그런 사람은 곤혹스럽다.

미당 선생은 그러나저러나 만사 오케이였는데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객기를 부리다가 당한 것이 아니라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배식한 반찬에 자율배식은 밥을 남긴 적이 별로 없는데 반 정도는 남겼다.

반찬도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당기질 않았다.

먹기 전에도 그랬고, 먹고 나서도 속이 안 좋았다.

가벼운 운동으로 일정 부분 이겨냈는데 퇴근해 집에 가니 그게 아니었다.

속이 메스껍고, 으스스 춥기도 하고, 배도 부듯하고, 만사가 귀찮다.

데보라가 삼천포 시장에서 장을 봐 온 코다리, 식빵, 사과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먹어보겠느냐고 의향을 물었으나 말하는 것도 싫었다.

 

칭병

불도 뜨끈뜨끈하게 때고, 이부자리도 펴라 하고는 누웠다.

그런데도 추웠다.

체온이 올라간다는 징조였다.

겁이 벌컥 났다.

이고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다.

몸은 불편했지만 머리는 팡팡 돌아갔다.

만약에 이 증세가 계속되면 영락없는 코로나 걔니 보건소로 신고를 하고, 현장과 발전소에 연락하고, 자가 격리하면서 방역 당국 지시에 따른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래도 혹시 자가 오진일 수도 있으니 식음 전폐 상태에서 더 몸조리하고 기다려볼 참으로 임하였다.

눈이 휘둥그레져 걱정하면서 데보라가 가져온 소화제를 먹고, 약간의 커피를 가미한 뜨건 설탕물을 두 컵 마시고, 뜨거운 물로 지지면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자리에 누우면서 있는 이불은 다 갖다가 위에 덮어 달라 부탁하였다.

데보라가 재빠르게 움직여 모든 조치를 하였으나 이불 속에 파묻힌 이 사람은 땀이 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지도 않았다.

 

체온 상승=코로나 징조.

하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었다.

약한 소리의 끙끙 앓는 신음이 나왔다.

조금만 더 기다려봤다가 임시 조치한 것이 효과가 없으면 바로 신고를 할 판이었다.

 

편을 갈라 쌈박질하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 다른 곳에 놓으라 하여 소리만 들으면서 이불 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이고 배와 머리를 만져 보면서 증세와 차도를 보았다.

그러다가 잠에 들어 깨보니 가요무대 시간이었다.

() 목사 가수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가 진단을 해봤더니 괜찮았다.

컨디션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리 나쁘진 않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한숨을 쉬면서 큰일 날 뻔했네. 코로나인 줄 알고 걱정했는데 멀쩡하네라고 쾌차를 선포하였다.

데보라도 얼굴이 환해지면서 정말로 괜찮으냐고 되물어 거뜬하다며 물이나 한잔 더 먹자고 했다.

 

이건 분명 코로나를 잡기 위한 개문식사 탓인 것 같다.

용궁 갔다 왔다고까지 호들갑을 떨 것은 아니나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것이 나타나 태클을 거는 격이 아닌가 한다.

계속하여 반복된다 해도 어차피 그를 다뤄야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일그러진 일상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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