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O 줄 타다

by Aphraates 2021. 8. 15.

O 줄 타다.

영어로는 'burn the candle at both ends'라고 돼 있다.

직역하면 "양쪽 끝에(at both ends) 양초(candle) 태우다(burn)"가 된단다.

그림과 같이 양쪽 끝에서 양초가 타들어 가고 있다고 상상을 해 보면 뭔가로 인해 매우 바쁘거나 업무에 지쳐있는 상황이 연상된단다.

 

O줄 타다, 다음

오늘 새벽에 미당 선생이 영락없이 당했다.

 

시작종이 울려서 시험 문제 풀이를 시작했다.

왼쪽 자리에는 우리나라 넘버 2S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친구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모르는 수험생이 앉아서 열심히 시험을 보고 있었다.

미당 선생은 불량 수험생이었다.

원래 실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문제를 풀 생각은 안 하고 친구의 처분만 바라고 시험을 보는 척하면서 끌쩍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친구가 시험을 다 마치고 일어서려고 했다.

얼른 붙잡아 앉히고는 답을 알려 달라고 하였다.

시험 감독관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친구가 알려주는 대로 답안 마킹을 해나갔다.

그런데 문제의 반도 못 풀었는데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뒷문을 통해 나가버렸다.

 

왜 그러느냐고 말릴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그랬다.

서운해할 겨를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볼 여유도 없었다.

아득했지만 자신의 실력으로 풀어야 했다.

문제를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러나 정확히 아는 답이 별로 없었다.

맨 모르거나 이상한 문제여서 진도도 안 나갔다.

시간은 얼마 안 남았을 거 같은데 산 넘어 산이었다.

문제는 안 풀리지, 시험 감독관은 내 앞에 서서 가만히 있지. 옆에 있는 수험생은 여유를 부리면서 나를 보고 웃지, 속에서 화장실에 빨리 가라고 야단이지......, 사면초가 정도가 아니라 O 줄 탄다는 말 그대로였다.

연필 굴릴 상황도 아니었다.

눈깜땜깜으로 찍어 나갔다.

땀만 삐질삐질 흘리다가 시험을 끝내지도 못하고 잠에서 확 깼는데 실제로 땀이 나 있어 꿈을 실현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다.

 

얼마 동안 꿈속에서 몸부림을 쳤는지 정확지는 않다.

추정해봤다.

이른 새벽에 눈이 띄어 글을 쓰다가 평화방송 성무 일도를 시작하면서 잠이 들었다가 수녀원 수녀님들 묵주기도 4단이 끝날 때쯤에 깼으니 1시간 정도는 꿈속에서 헤맸던 것 같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따질 것은 아니다.

다만 근래 들어 꿔보지 못한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여 헤매는 꿈을 꿨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슨 일일까.

그럴만한 일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집히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지난 731일에 본 125회 기술사 시험의 채점 절차에 들어간 것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돼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염치없지만 좋은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이미 끝난 시험이니 미련을 두고 더 생각할 것 없다면서 복기나 자체 평가도 안 해봤는데 꿈속에 나타난 거 같으니 2주가 지난 오늘은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대개는 아하, 그랬구나하고 무릎을 치기보다는 아차, 그거였구나하고 머리를 긁적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상황에 해당할지라도 냉철하게 자체 평가를 해 보는 것이 수험생의 도리인데 잘 안 된다.

실패한 것을 되돌아보기도 싫고, 실수한 것을 살펴보기도 싫다.

그리고 자체 점수를 먹여보면 처음에는 낙관적으로 후하게 먹이다가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어 박하게 먹여 이번에도 어렵겠다고 하면서 행운을 바라곤 하는데 그도 실력 미달의 서글프고 구차한 모습이다.

 

광복절 모처럼 만에 성당 미사 참례에 가는 날 이상한 꿈이 불편하다.

일단은 다 잊어버리고 방역수칙을 엄격히 지키며 미사를 봉헌하고 와서 무슨 꿈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색  (0) 2021.08.17
그냥 갑니다  (0) 2021.08.16
홍두깨  (0) 2021.08.14
사뿐사뿐  (0) 2021.08.14
이 영표  (0)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