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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옆이 휑해서

by Aphraates 2021. 11. 6.

삼천포 현장이 화룡점정 중이다.

준공 단계의 옥외 공사를 종료하느라 전화기와 서류철을 들고 현장과 사무실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데 윗도리 옆이 휑했다.

아랫도리 안이 허전한 것이 아니었다.

초겨울답지 않게 온도가 높아 젊은 직원들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닐 정도인데 옆이 왜 휑한 것인지 순간적으로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업무를 진행했다.

 

점심시간이 됐다.

안전모를 쓰고, 쌍안경과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다니다 보니 머리가 말씀이 아니었다.

검게 그은 얼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빤히 보이는 헝클어지고 눌린 짧은 머리 모양으로 식당으로 갈 수는 없어서 화장실에서 물로 머리를 만지며 헹하던 곳을 들춰봤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나른 나른하던 추동복 면() 셔츠 겨드랑이 부분이 헤어져 한 뼘 정도가 쩍 벌어져 있었다.

누가 볼까 봐 얼른 여며 봤지만 오므려지지 않았다.

얼른 사무실로 돌아와 셔츠와 조끼를 벗어서 가방에 우그려 넣고는 윗도리는 추동 아웃 웨어 하나만 입고 지퍼를 목 부분까지 끌어 올려 목 부분 속이 안 보이도록 했다.

거울을 보니 속에 뭘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표가 나지 않았다.

누가 보기 전에 발견하고 조치했기 다행이지 셔츠가 낡아 떨어져 속살이 훤히 보이는 모습을 할 뻔했다.

 

다시 단장하고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우스웠다.

옷걸이가 시원찮아 볼품은 없지만 헤매거나 남루한 스타일은 아닌데 지금 같은 세상에 옷이 낡아 터져서 속살이 보일 정도로 입었다니 안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알뜰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주변머리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손에 익은 것을 버리지 않는 습관에다가 옷을 편하게 입고 다니는 패션에 대한 무심함이 아닌가 한다.

집에 와서 해진 옷을 내보이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데보라가 누가 알까 무서우니 예기하지 말라며 같이 산 다른 셔츠 하나도 촘촘히 살펴보더니 이것도 그렇다면서 얼른 안방으로 갖고 가 가방에 넣었다.

 

나이 들수록 옷을 밝게 입고 몸가짐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고 하던데 그래야겠다.

현재 가진 옷만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헤진 옷을 입고서는 무르팍이 훤히 보이는 바지를 입고 다니는 청춘들처럼 패션 감각에 충실한 것이라고 변명할 것은 아니다.

멋을 부린다거나 좋은 옷을 자랑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렇게 몸과 맘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자 이웃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다.

 

옆지기가 없으면 온몸이 허전하다.

머리가 비면 삶이 고달프다.

호주머니가 비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런 것이야 운명적이니 어찌할 수 없다 하지라도 있는 옷을 두고도 윗도리가 휑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신상에 대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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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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